문화재/충남민속문화재

충청남도 민속문화재 제20호 무안박씨요여 (무안박씨요여)

오늘의 쉼터 2011. 10. 6. 08:29

 

 

 

종 목 충청남도  민속문화재  제20호
명 칭 무안박씨요여 (무안박씨요여)
분 류 유물 / 생활공예/ 목공예/ 가구류  
수량/면적 1식

지정(등록)일

2004.10.30

소 재 지 충남 논산시  상월면 대명리 386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무안공씨 암천공파
관리자(관리단체) 박종욱
상 세 문 의 충청남도 논산시 문화관광과 041-730-3226

 

일반설명

 

이 요여는 1871년(고종8) 홍주 노은서원(현 홍성군 홍북면 노은리)이 훼철되면서 성삼문의 신주를 모실 곳이 없어지자, 노성의 당호재(현 논산시 상월면 학당리)로 신주를 옮겨오면서 사용한 요여로, 성삼문은 1456년 박팽년 등과 함게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가 참화를 당하였는데, 당시 그의 동생과 아들 등이 모두 죽임을 당하여 혈손(血孫)이 끊어졌다. 성삼문의 부인 김씨가 관비로 끌려가서도 신주(神主)를 모시고 제사를 지냈고, 김씨가 죽은 후에는 외손인 박호(朴壕, 1466~1536)의 집안에서 대대로 제사를 받들다가 임진왜란 등 혼란기에 신주를 땅 속에 묻게 되었다. 그러다가  1672년 인왕산의 바위가 무너지면서 땅에 묻혀있던 성삼문의 신주가 발견되었고, 이는 홍주 노은동에 있는 성삼문의 생가에 봉안되었다. 당시 우암 송시열은 <성선생신주천봉기(成先生神主遷奉記)>를 지어 이러한 상황을 정리하였고, 이듬해 노은동의 성삼문 생가터에 유허비를 세웠다. 또 1676년(숙종 2)에는 노은동에 사육신을 모시는 사우가 건립되었고, 이 사우는 1692년 녹운서원(祿雲書院), 1712년 (숙종38)에는 노운서원(魯雲書院), 1769년(영조45) 노은서원(魯恩書院)이라 3차례에 걸쳐 사액을 받았다. 1871년(고종 8) 대원군의 서원훼철령에 의해 홍주 노은서원이 훼철되면서 성삼문의 신주를 모실 곳이 없게 되었다. 이에 성삼문의 제사를 모시고 있던 무안박씨 집안의 박진하(朴鎭廈)가 예조의 승인을 얻어 노성 당호재에 옮겨 봉안하였다. 한편, 이 신주는 1903년(광무 7) 칙명에 의해, 성삼문의 봉사손이 결정되면서 창녕성씨 집성촌인 연기군 금남면 달전리 사우(현 문절사)로 옮겨졌다.

 

 

무안박씨 요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