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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라~ 님의.. 차이코프스키 1840 ~ 1893 제어된 로맨티시즘, 슬픈 듯 달콤한 센티멘탈리즘의 정수

오늘의 쉼터 2011. 6. 22. 15:03

 

 


 

 

{ 차이코프스키 / Tchaikovsky, 1840~ 1893, 러시아 }
<제어된 로맨티시즘 , 슬프 듯 달콤한 센티멘털리즘의 정수>

- 차이코프스키의 삶과 음악세계 -



 

차이코프스키의 선율, 그 화려하고도 우울한 정감적인 힘!


 

그의 음악은 고전적 형식미를 유지한채 달콤한 정감은
고전과 낭만의 미묘한 균형을 유지하면서 낭만주의 혹은
민족주의 시대인 그의 음악에서 그만의 독특한 고전미를 형성.
우리는 그를 '러시아의 별'이라 부른다.
차이코프스키는 4세 때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은나, 어학쪽에 더욱 재능을
6,7세에 벌써 독어 불어를 구사할 정도였다.
그 당시 차이코프스키는 상류계급의 풍조에 따라 법률학교에서 공부하 후
법무성 관리로 근무했으나, 음악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가 없어
1860년 '안토 루빈 슈타인이 주재한 음악교실에 입학, 러시아 최초의
음악원으로 개편한 이 교실의 제 1기생이 되었다.
교장이었던 안톤 루빈슈타인과 그의 동생 니콜라이 루빈슈타인은
그를 잘 밀어주었고 모범생 차이코프스키는 최고의 실력에 도달.
'러시아5인조' 라고 부르는 그들은 음악원 그리고
차이코프스키와는 언제나 사이가 좋지 않았다.
모스크바 음악워이 설립되자 교관으로 일하다가 철도 부호의 미망인
폰 메크 부인을 알게 돼 재정적 지원을 받으면서부터
교직을 떠나 창작활동에 저념할 수있었다.
감정에 섬세하게 말하느 그의 음악적 성향은 독일 낭만주의 음악과
매우 가까우며, 그의 작품은 자기 표현적이고 매혹적이며 화려하고
때로는 천박하기도하다. 절망감은 후기에 갈수록 점점 더해
마지막 작품인 <비창>에서 절정에 이른다.
그의 음악은 풍부한 선율적 영감, 상상력, 관현악법에 대한 재능을 보여줌.
비록 후기 작품에 가서는 의식적으로 미족주의를 거부하고 있지만
그 바탕에 이쓴 정서와 특징은 국민악파 작곡가들 만큼이나 러시아적.
그는 정서적인 작품들을 통해 폭 넓은 계층의 청중들로부터
커다란 인기를 얻어 다른 한편으로 그가 만들어 내는 최면효과 때문에 그의
그의 진정한 음악적 재능에 대한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기도 함.



 


 

* 교향곡 제6번 B단조 <비창> Op.74 *


 


 

1. Adajio - Allegro Non Troppo - Andante
- Moderato Mosso - Andante - Moderato Assai
- Allegro Vivo - Andante Come Prima - Andante Mosso


 

2. Allegro Con Grazia


 

3. Allegro Molto Vivace


 

4. Finale. Adagio lamentoso - Andante


 

탄식의 애가, 절망의 슬픈 아다지오

 


 

세련된 슬라브적 정감! 절망의 심연! '마음이 몹시 슬프다'는
뜻의 비창, Pathetique 이라는 제목이 말해 주듯이


 

탄식의 애가가 절망적인 어두움으로 전체를 드리우나 균형과
현악의 빛나는 색채는 차이코프스키의 특유의
선율이 되어 아름다움의 극치로 인류 교향곡 역사상
뛰어난 명작으로 남아있다.



 

 
 
{Tchaikovsky / String Quartet No.1 - 안단테 칸타빌레 }
 
브람스처럼 3개의 현악사중주곡을
쓴 차이코프스키. 2악장 '안단테 칸타빌레'가 워낙
유명하여서 아예 이 작품의 제목이 되었다.
러시아 민요를 가장 예술적으로 조화시킨 기악곡
이란 평을 듣는 이 곡은 바이올린에
피아노 반주로도 자주 연주되는데, 사실 현악사중주로
연주할 때도 제1바이올린의 솔로나 다름없다.
덕분에 다른 단원들은 쉬어가는 악장으로 알고 있다.
후에 러시아 대문호 톨스토이는 이 곡을 듣고
눈물을 흘렸는데, 차이코프스키는 그 당시의 일을
회상하며 자신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라 말했다.
 
 
{Tchaikovsky - String Quartet No.3. Op.30. part 1/6}
 
차이코프스키의 장례식에는 수많은
인파가 참석했고, 만약 콜레라로 사망했다면
절대 치러질 수 없는 의식, 즉 손에 키스
하는 의식이 치러졌다.
 
그를 추모하기 위해 연주된 곡은 교향곡이나 발레곡이
아닌현악사중주 3번의 장송곡이었다.
 
그는 생전에 이런 말을 남겼다.
"내가 만약 진정 나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악보에 옮겨 적었다면
그것은 다른 곡이 아니라 <현악사중주>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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