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처와의 인연 속에는 문물의 오감도 한 몫을 했다. 우리는 고구려 고분벽화나 신라의 유물 중에서 쿠처와 공유하고 있는 몇 가지 문명요소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 대표적인 것이 악무다. 중국 수나라 때의 구부기(九部伎)나 당나라 때의 십부기에 사용되는 악기들 중에는 서역 악기에 속하는 5현이나 요고, 동발, 공후, 피리, 저, 소 등의 악기가 고구려기와 구자(쿠처)기에 공통으로 등장한다. 그밖에 고구려의 장천1호분 벽화에는 오현이, 고구려의 집안4호분 벽화와 신라의 비암사 아미타불삼존석상에는 요고가, 신라의 상원사 범종 종신에는 공후가, 고구려의 장천1호분 벽화에는 피리가 그려져있다. 이 모든 것은 두 지역간의 활발한 악무교류를 말해주고 있다.
또 9세기 대문호 최치원이 저술한 <향악잡영오수(鄕樂雜詠五首)>에는 신라 때 유행한 금환, 월전, 대면, 속독, 산예 등 다섯 가지 놀이를 소개하고 있는데, 모두가 서역계통의 것이다. 그 중 오늘날까지도 전승되는 산예(?猊)는 다섯 마리의 사자들이 추는 해학적인 춤으로 쿠처로부터 전래된 것이다. 최치원의 묘사에 의하면, 멀리 서방 사막을 지나오느라 털옷은 다 해지고 온몸엔 티끌만 뒤집어쓴 사자가 인덕(仁德)이 배어있는 머리와 꼬리를 흔들면서 영특한 기개와 재주를 자랑한다. 이런 사자춤이 오늘날까지도 우리 무형문화유산인 ‘북청사자놀이’ ‘봉산탈춤’, ‘통영오광대’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보면 쿠처와 우리는 다같이 춤과 노래를 즐기는 한동아리의 문명인들이다.
글 정수일 문명사 연구가, 사진 이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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