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상식/문학관

광화사 / 김동인

오늘의 쉼터 2011. 4. 8. 16:07

 

광화사 / 김동인 
 
 
인왕(仁王)
바위 위에 잔솔이 서고 잔솔 아래는 이끼가 빛을 자랑한다.
굽어보니 바위 아래는 몇 포기 난초가 노란 꽃을 벌리고 있다.

바위에 부딪치는 잔바람에 너울거리는 난초잎. 여(余)는 허리를 굽히고 스틱으로 아래를 휘저어보았다.

그러나 아직 난초에는 4,5축의 거리가 있다.
눈을 옮기면 계곡.
전면이 소나무의 잎으로 덮인 계곡이다.

틈틈이는 철색(鐵色)의 바위로 보이기는 하나, 나무밑의 땅은 볼 길이 없다.
만약 여로서 그 자리에 한 번 넘어지면 소나무의 잎 위로 굴러서 저편 어디인지 모를 골짜기까지 떨어질 듯하다.
여의 등뒤에도 2,3장(丈)이 넘는 바위다.

그 바위에 올라서면 무학(舞鶴)재로 통한 커다란 골짜기가 나타날 것이다.
여의 발아래도 장여(丈餘)의 바위다.

 아래는 몇 포기 난초, 또 그 아래는 두세 그루의 잔솔, 바위 아래로부터는 가파른 계곡이다.
그 계곡이 끝나는 곳에는 소나무 위로 비로소 경성시가의 한편 모퉁이가 보인다.
길에는 자동차의 왕래도 가맣게 보이기는 한다.

여전한 분요(紛擾)와 소란의 세계는 그곳에 역시 전개되어 있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 지금 서 있는 곳은 심산이다.

 심산이 가져야 할 온갖 조건을 구비하였다.
바람이 있고, 암굴이 있고, 산초 산화가 있고, 계곡이 있고, 생물이 있고, 절벽이 있고,
난송(亂松)이 있고― 말하자면 심산이 가져야 할 유수미(幽邃味)를 다 구비하였다.
본시는 이 도회는 심산 중의 한 계곡이었다.

그것을 5백년간을 닦고, 갈고, 지어서 오늘날의 경성부를 이룬 것이다.
이러한 협곡에 국도(國都)를 창건한 이태조의 본의가 어디에 있었는지를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오늘날의 한 산보객의 자리에서 보자면 서울은 세계에 유례가 없는 미도(美都)일 것이다.
도회에 거주하며 식후의 산보로서 푸대님 채로 이러한 유수(幽邃)한 심산에 들어갈 수 있다 하는 점으로 보아서
서울에 비길 도회가 세계에 어디 다시 있으랴.
회흑색(灰黑色)의 지붕 아래 고요히 누워 있는 5백년의 도시를 눈아래 굽어보는 여의 사위에는 온갖 고산식물이 난성(亂盛)하고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와 눈아래 날아드는 기조(奇鳥)들은 완전히 여로 하여금 등산객의 정취를 느끼게 한다.
여는 스틱을 바위틈에 꽂아 놓았다. 그리고 굴러 떨어지기를 면키 위하여 잔솔의 새에 자리잡고 비스듬히 앉았다.
담배를 피우고 싶었으나 잠시의 산보로 여기고 담배도 안 가지고 나온 발이 더듬더듬 여기까지 미쳤으므로 담배도 없다.
시야의 한편에는 2,3장의 바위, 다른 한편에는 푸르른 하늘, 그 끝으로는 솔잎이 서너 개 어렴풋이 보인다.
그윽이 코로 몰려들어 오는 송진님새. 소나무에 불리는 바람소리―


 유수키 짝이 없다.

 여가 지금 앉아 있는 자리는 개벽 이래로 과연 몇 사람이나 밟아 보았을까.
이 바위 생긴 이래로 혹은 여가 맨처음 발 대어본 것이 아닐까.
아까 바위를 기어서 이곳까지 올라오느라고 애쓰던 그런 맹랑한 노력을 하여본 바보가 여 이외에 몇 사람이나 있었을까.
그런 모험을 맛보기 위하여 심산을 찾아온 용사는 많을 것이로되 결사적 인왕 등산을 한 사람은 그리 많으리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등 뒤 바위에는 암굴이 있다.
뱀이라도 있을까 무서워서 들어가보지는 않았지만 스틱으로 휘저어 본 결과로도,
세사람은 넉넉히 들어가 앉아 있음직하다.
이 암굴을 무엇에 이용할 수가 없을까.
음모의 도시. 한양은 그새 5백년간 별별 음흉한 사건이 연출되었다.
시가 끝에서 반시간 미만에 넉넉히 올 수 있는 이런 가까운 거리에 뚫린 암굴은, 있는 줄 알기만 하였으면 혹은 음모에 이용되지 않았을까.                        
공상!
유수한 맛에 젖어 있던 여는 이 암굴 때문에 차차 불쾌한 공상에 빠지기 시작하려 한다.
온갖 음모, 그 뒤를 잇는 살육․ 모함․ 방축, 이조 5백년간의 추악한 모양이 여로 하여금 불쾌한 공상에 빠지게 하려 한다.
여는 황망히 이런 불쾌한 공상에서 벗어나려고 주머니에 담배를 뒤적이었다.

그러나 담배는 여전히 있을 까닭이 없었다.
다시 눈을 들어서 안하를 굽어보면 일면에 깔린 송초(松梢)!
반짝!
보매 한줄기의 샘이다.

 소나무 틈으로 보이는 그 샘은 아마 바위틈을 흐르는 샘물인 듯. 똘똘똘똘 들리는 것은 아마 바람소리겠지.
저렇듯 멀리 아래 있는 샘의 소리가 이곳까지 들릴 리가 없다.

샘물!
저 샘물을 두고 한 개 이야기를 꾸며볼 수가 없을까.
흐르는 모양도 아름답거니와 흐르는 소리도 아름답고,

그 맛도 아름다운 샘물을 두고 한 개 재미있는 이야기가 여의 머리에 생겨나지 않을까.
암굴을 두고 생겨나려던 음모․ 살육의 불쾌한 공상보다 좀더 아름다운 다른 이야기가 꾸며나지 않을까.
여는 바위틈에 꽂았던 스틱을 도로 뽑았다.

그 스틱으로써 여의 발아래 바위를 가볍게 두드리면서 한 개 이야기를 꾸며 보았다.

한 화공이 있다.
화공의 이름은? 지어내기가 귀찮으니 신라 때의 화성(畵聖)의 이름을 차용하여 솔거(率居)라 하여 두자.
시대는?
시대는 이 안하에 보이는 도시가 가장 활기 있고 아름답던 시절인 세종 성주의 때쯤으로 하여 둘까.
백악이 흘러내리다가 맺힌 곳.

거기는 한양의 정기를 한몸에 지닌 경복궁 대궐이 있다.
이 대궐의 북문인 신무문(神武問) 밖 우거진 뽕밭 새에 중로(中老)의 사나이가 오뇌(懊惱)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다.
화공 솔거였다.
무르익은 여름, 뜨거운 볕은 뽕잎이 가리워준다. 하나,
훈훈한 기운은 머리 위 뽕잎과 땅에서 우러나서 꽤 무더운 이 뽕밭 속에 숨어 있는 화공,
자그마한 보따리에는 점심까지 싸가지고 온 것으로 보아 저녁까지 이곳에 있을 셈인 모양이다.
그러나 무얼 하는지, 단지 땀을 펑펑 흘리며 오뇌스러운 얼굴로 앉아 있을 뿐이다.
왕후 친잠(王后親蠶)에 쓰이는 이 뽕밭은 잡인들이 다니지 못할 곳이다.

하루 종일을 사람의 그림자 하나 얼씬하지 않는다.
때때로 바람이 우수수하니 뽕나무 위로 불기는 하나 솔거가 숨어 있는 곳에는 한점의 바람도 들어오지 않는다.
이 무더운 속에 솔거는 바람이 불 적마다 몸을 흠칫흠칫 놀라며,
그러면서도 무엇을 기다리듯이 뽕나무 그루 아래로 저편 앞을 주시하고 있다.

 

'종합상식 > 문학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감자 - 김동인  (0) 2011.04.08
배따라기 / 김동인  (0) 2011.04.08
발가락이 닮았다 / 김동인   (0) 2011.04.07
역마(驛馬) / 김동리(金東里)   (0) 2011.04.06
별 / 황순원   (0) 2011.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