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서울무형문화재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20호 남이장군사당제(남이장군사당제)

오늘의 쉼터 2011. 3. 4. 11:07



종 목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20호
명 칭남이장군사당제 (남이장군사당제)
분 류무형유산 / 전통연행/ 의식/ 무속의식
수량/면적

개인

지 정 일1999.07.01
소 재 지서울 종로구  창신동 664-3
시 대대한민국
보 유 자?
관 리 자?

 

설명

 

남이 장군은 세종 23년(1441)에 태어나 17세에 무과에 합격하고, 26세에 이시애의 난과 여진족을 격퇴하여 병조판서에 올랐으나 유자광의 모함으로 27세의 젊은 나이로 참수를 당하였다. 남이장군사당제는 남아의 기개를 펴보지 못하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장군의 생을 안타깝게 여겨 그의 원혼을 달래주고, 충절을 기리고자 약 300년 전에 사당을 지은 후 해마다 지내는 제사이다. 특히 10월 1일에는 전야제를 비롯하여 큰 굿을 벌이면서 주민들이 근심, 걱정 해소와 쾌복을 빌어 자연스럽게 이 지역의 민속신앙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남이 장군 사당제가 시작되면 걸립패들이 농악을 울리며 집집마다 방문하여 당제와 당굿에 소요되는 경비를 마련하는데, 농악대의 단순한 걸립이라기보다는 무녀가 참여하여 집집마다 축원을 해주는 마을돌기굿에 해당하는 신앙성이 강한 의례이다. 예전의 당굿에서는 꽃을 당집에 모셨다가 본당으로 모셔오는 영신의례로 꽃받기가 있었으나, 현재는 꽃등렬 행사로 발전하여 산천동 당집에서 사당까지 행진하고 사당에서 제를 올린다. 남이장군사당제는 악공들의 제례음악에 맞추어 유식제례로 지내고 이어 무굿이 진행되는데, 강릉단오제나 은산별신제와 그 형태가 비슷하다. 다만 장군행렬은 신꽃을 들고 마을을 한바퀴 돌아오는 것이 사실상 신의 마을 행차에 해당되는 것이다.

현대에 이르러 마을굿이 사라져 가는 실정에서 남이장군 사당제는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보존하고 있다는데 그 의의가 있으며, 주민들의 적극적인 협력과 참여로 축제성을 띤 마을제의로 자리잡고 있다.




남이장군사당제

남이장군사당제

남이장군사당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