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 목 | 문화재자료 제332호 (천안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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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칭 | 한명회선생신도비(韓明會先生神道碑) |
분 류 | 기록유산 / 서각류/ 금석각류/ 비 |
수량/면적 | 1기 |
지정(등록)일 | 1994.11.04 |
소 재 지 | 충남 천안시 수신면 속창리 산 11-1 |
시 대 | 조선시대 |
소유자(소유단체) | 청주한씨종중 |
관리자(관리단체) | 한희현 |
상 세 문 의 | 충청남도 천안시 문화관광담당관실 041-521-2034 |
일반설명 신도비란 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업적을 기록하여 그의 묘 남동쪽에 세워두는 것으로, 이 비는 조선 전기의 문신인 한명회 선생의 공적을 적고 있다. 한명회(1415∼1487)는 두 딸이 각각 예종비 장순왕후, 성종비 공혜왕후가 되었다. 문종 2년(1452) 경덕궁직을 시작으로 관직에 올랐으며, 단종 1년(1453) 계유정난이 일어나자 수양대군의 심복이 되어 큰 공을 세워 1등 공신이 되었다. 세조 2년(1456) 사육신의 단종복위운동을 좌절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여 도승지, 이조판서에 이어 병조판서에까지 올랐고,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영의정을 지내었으며, 성종 2년(1471)에는 영춘추관사로서『세조실록』의 편찬에도 참여하였다. 세조이래 성종대까지 높은 관직에 있으면서 나랏일에 관여하였으며, 네 차례에 걸쳐서 1등 공신이 되어 많은 토지와 노비를 받아 여유로운 삶을 누리며 살았다. 죽은 후에는 세조의 묘정에 그를 기리는 신주가 모셔졌고, ‘충성’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비는 낮은 사각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우고 머릿돌을 올린 모습이다. 받침돌 윗면에는 연꽃을 새겨 장식하였고, 머릿돌에는 구름 속을 헤치는 두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서로 다투는 모습을 조각해 놓았다. 조선 성종 19년(1488)에 세운 것으로, 선생이 서거한 그 이듬해의 일이다.
조선초기 상당부원군 한명회(1415~1487)의 신도비로 비의 윗쪽에 한명회의 묘가 있다. 신도비는 조선시대 2품 이상 관직을 한 사람에 한하여 무덤에 들어가는 길 입구에 세운 비(墓碑)이다. 한명회의 자(字)는 자준(子濬), 호(號)는 압구정(鴨驅亭), 본관은 청주이다. 수양대군이 세조가 되는데 기여를 하였고, 이후 조선 초의 중요한 관료로 활동하여 1등 공신을 네 번이나 받았고, 상당부원군에 봉해졌다. 장순황후(章順王后:睿宗妃)와 공혜왕후(恭惠王后:成宗妃)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비 몸과 이무기가 새겨진 덮개 돌은 대리석이도 비의 받침은 화강석으로 만들어져 있다. 비의 받침에는 안상(眼象)이 새겨져 있고, 덮개 돌에는 두마리의 이무기를 돋을 새김 하였는데 조각수법이 우수하다. 비문은 서거정(徐居正)이 지었고, 비문의 말미에 성종 19년(1488)에 비(碑)를 세웠음을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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