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경기문화재자료

문화재자료 제120호 (용인시) 죽정최유경묘역(竹亭崔有慶墓域)

오늘의 쉼터 2010. 12. 12. 11:01

 

 

 

종 목 문화재자료  제120호 (용인시)
명 칭 죽정최유경묘역(竹亭崔有慶墓域)
분 류 유적건조물 / 무덤/ 무덤/ 봉토묘
수량/면적 일원
지정(등록)일 2003.04.21
소 재 지 경기 용인시  기흥구 공세동 산1-1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전주최씨편도공파종중
관리자(관리단체) 전주최씨편도공파종중
상 세 문 의 경기도 용인시 문화관광과 031-324-3049, 2148

 

일반설명

 

최유경(崔有慶)의 묘소는 기흥구 공세동 자봉산(紫鳳山) 기슭에 있다. 그의 묘는 조선 초기의 형식인 방형상분묘 (方形雙墳墓)로서 2단의 장대석 (長臺石)이 둘러져 있고, 묘 앞에는 묘표(墓表)·상석· 향로석·장명등, 그리고 좌우에는 동자석(童子石)·문인석(文人石) 등의 석물이 각각 배치 되어 있다. 묘 우측에 위치한 묘갈(墓碣)은 장방형 지대석 위에 옥개석(屋蓋石)을 갖추었으며, 비신의 석질은 대리석이다. 묘역 입구에는 영덕재(永德齋)가 건립되어 있고, 그 우측에는 1950년대 에 건립된 신도비가 있다.

하단에 있는 묘는 그의 아들로서 판이조사 (判吏曹事)를 지낸 사강(士康)부부의 묘다. 쌍분임에도 장면 등을 묘 앞에 각각 1개씩 세운 것이 특징이다. 최노첨의 묘는 방형 지대석이 생략된 원형 봉토분으로서 묘지 기단석이 생략되었고, 상석 하단에 앙련(仰蓮)의 연화문을 둘른 것이 특징이다. 최노첨은 최유경의 8대손으로 인조때 용인현령을 지낸 바 있다.

최유경(1343-1413)은 고려말, 조선초의 문신으로 자는 경지(慶之), 호는 죽정(竹亭),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고려 공민왕 21년(1372) 판도좌랑(判圖佐郞)이 되었다. 사헌 장령(司憲掌令)으로 있을 때 윤충좌(尹忠佐)의 교만 방자함을 탄핵했다. 이어 여러 벼슬을 지내며 공을 세웠다. 특히 이성계(李成桂)의 조선 개국을 도와 개국원종공신(開國原從功臣)이 되었다. 태조 6년(1397)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로서 경기·충청 도체찰사(都體察使), 이듬해 개성유후(開城留侯)로서 경기우도(京畿右道) 도관찰출척사(都觀察黜陟使)가 되었다. 태종 1년(1401) 정조사(正朝使)가 되어 명(明)나라에 다녀 왔다. 판한성부사(判漢城府使)로 있다가 사임했다. 태종때 청백리(淸白吏)에 녹선(祿選)되었다. 시호는 평도(平度)이다.

 

 

 


최유경 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