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대전유형문화재

시도유형문화재 제42호 (유성구) 백자유개호(白磁有蓋壺)

오늘의 쉼터 2010. 12. 8. 08:43

 

 

종 목 시도유형문화재  제42호 (유성구)
명 칭 백자유개호 (白磁有蓋壺)
분 류 유물 / 생활공예/ 토도자공예/ 백자
수량/면적 1점

지정(등록)일

2009.12.23

소 재 지 대전 유성구  국립중앙과학관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국립중앙과학관
관리자(관리단체) 국립중앙과학관
상 세 문 의 대전광역시 유성구 문화공보실 042-611-2078
 
일반설명
 
뚜껑을 포함하여 총 높이가 약 25㎝에 이르는 조선 전기의 중형 백자항아리이다. 항아리는 구연의 끝이 심하기 외반하여 옥연형(玉緣形)을 이루며 굽은 구연의 지름보다 약간 작고 직립해 있다. 최대 직경이 중아부에 있는 이 항아리는 얼핏 보면 마치 조선 후기의 원호(圓壺)와 유사한 형태를 지닌다. 그러나 조선후기의 항아리와 비교했을 때 높이에 비해 너비가 넓어 약간 납작하면서 타원형에 가까운 느낌을 주며 옥연형의 구연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뚜껑은 보주형의 꼭지를 중심으로 외면을 3단으로 깎았고, 뚜껑의 구연부를 수직으로 처리하여 항아리의 구연부를 충분히 덮도록 제작하였다. 뚜껑을 만든 순서는 물레위에서 거꾸로 성형한 다음, 반건조상태에서 뒤집어 뚜껑 상면을 3단으로 깎았으며 나중에 보주형의 꼭지를 붙여 완성한 것이다.
백자유개호의 태토를 매우 순도가 높은 백점토를 활용한 듯, 잡물이 전혀 없고 유약 또한 균일하게 시유(施釉)되고 빈틈이 없어 최상급의 백자임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광택이나는 유약 표면은 균열이 전혀 없어 잘 구워졌음을 알게 해주며 실제로 경도(硬度) 또한 매우 강하다. 이 항아리는 전체를 시유한 후 뚜껑내부에는 발톱처럼 생긴 요도구(窯道具)를 받쳐 구운 흔적이 7군데 남아 있으며, 항아리는 접지면의 유약을 닦아내고 모래를 받쳐 구웠다.
순도 높은 백토와 정교한 만듦새는 이 항아리가 지방요가 아닌 관요산 제품임을 알게해준다. 특히 경기도 광주일대에서 경질백자가 완성된 시점은 15세기 2/4분기경 이후로 그중에서 고급백자류는 대부분 갑발(匣鉢)에 넣어 구운 까닭에 그릇의 상면에 재가 앉아 있는 흔적이 전혀 없다. 현존하는 조선시대의 유물중 구연이 외반하고 몸체가 타원을 이루는 항아리의 대부분은 조선 전기에 제작된 것으로 이 항아리는 15세기 후반에서 16세기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항아리는 뚜껑을 세트로 갖추고 있어 꿀과 같은 귀한 용액이나 액체를 담는 용기로 활용했으리라 추측된다. 일반적으로 가마터에서 출토되는 항아리들은 수량이 매우 적은 편이다. 그중에서도 이 항아리의 경우는 품질이 매우 뛰어나 소비계층은 당시 최상류층에 국한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백자유개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