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강원기념물

강원도 기념물 제43호 (삼척시) 준경묘,영경묘 <해제>

오늘의 쉼터 2010. 10. 11. 09:54

 

종 목 강원도 기념물  제43호 (삼척시)
명 칭 준경묘,영경묘(濬慶墓,永慶墓)
분 류 유적건조물 / 무덤/ 무덤/ 봉토묘
수량/면적 2기
지정(등록)일 1981.08.05~2012.07.20
소 재 지 강원 삼척시  미로면 활기리 92,98,산149,하사전리 산53
시 대 고려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국유
관리자(관리단체) 삼척시
상 세 문 의 강원도 삼척시 문화공보실 033-570-3223
 
일반설명
 
준경묘는 조선 태조의 5대조인 양무장군(陽茂將軍)의 묘이고, 영경묘는 양무장군의 부인 이씨의 묘이다. 준경묘는 활기리에 있고, 영경묘는 약 4㎞ 떨어진 하사전리에 있다.

1899년에 왕명으로 묘소를 짓고, 재각(齋閣:제사를 지내기 전에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기 위해 머무는 공간 또는 제사에 필요한 물건들을 보관하는 공간)·제실(祭室)·비각(碑閣) 등을 세웠다. 준경묘 앞에는 앞면 3칸·옆면 2칸짜리 제각이 있는데, 지붕선이 옆에서 보았을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의 단순한 맞배지붕이다. 이 제각은 왕릉에 세워지는 정(丁)자형이 아니라 단순한 일(一)자형으로 되어 있다.

이 일대는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 되어 있어 원시림의 경관을 구경할 수 있는 경치가 좋은 곳이며, 이곳의 소나무들은 경복궁 중수 때 자재로 쓰였다고 한다.
 
 
전문설명

가. 준경묘 영경묘(濬慶墓·永慶墓)
강원도 삼척시 미로면 활기리와 하사전리에 있는 태조 이성계의 5대조인 목조(穆祖)의 부(父) 양무(陽茂)의 묘와 목조 모친인 평창이씨(平昌李氏)의 묘. 강원도 기념물 제43호.
이 묘는 전주이씨 실묘로는 남한 최고의 시조묘이다. 준경묘는 양무의 묘로 삼척시 미로면 활기리에, 영경묘는 평창이씨의 묘로 준경묘에서 약 4km 정도 떨어진 미로면 하사전리에 소재하고 있다.
이 두 묘는 이미 세종대에 어명에 의하여 찾아졌으나 그 진위에 대한 논쟁이 있어서 수묘(守墓)·치제(致祭)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지는 못하였으나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지역에 뚜렷한 근거가 있는 묘가 찾아지지 못함으로써 목조 선친의 묘로 점차 굳어졌다.
1899년 두 묘를 대대적으로 수축하고 재실·제각(祭閣) 등을 비롯하여 어제준경묘비(御製濬慶墓碑)·목조구거유지비(穆祖舊居遺址碑)·어제영경묘비(御製永慶墓碑)와 비각 등을 조성하였으며, 1984년 삼척군에서 보수, 정화하였다.
강원도 삼척시 미로면 활기리와 하사전리에 있는 태조 이성계의 5대조인 목조의 부 양무의 묘와 목조 모친인 평창이씨의 묘. 강원도 기념물 제43호. 준경묘는 양무의 묘로 삼척시 미로면 활기리에, 영경묘는 평창이씨의 묘로 준경묘에서 약 4km 정도 떨어진 미로면 하사전리에 소재하고 있다.
이 곳 주변은 울창한 송림이 형성되어 있으며, 보기 드문 명당이라고 알려져 있다. 제각에는 민가에서는 볼 수 없는 궁중제기(宮中祭器)가 보관되어 있으며, 매년 4월 20일에 전주이씨 문중 주관으로 제례를 올린다.
≪참고문헌≫ 世宗實錄, 高宗實錄, 三陟의 歷史와 文化遺蹟(강원도·삼척시·관동대박물관, 1995), 穆祖의 活動과 紅犀帶考(元永煥, 江原史學 9, 1993).
나. 양무(楊茂)
생몰년 미상. 백제시대의 관리. 북중국출신의 한인계(漢人系) 백제인으로 추정된다. 467년(개로왕 13)과 471년에 각각 유송(劉宋)에 사신으로 파견된 바 있으며, 동성왕대에도 대중국외교의 일선에서 활약하였다.
그 공으로 행건위장군 조선태수(行建威將軍朝鮮太守)로서 사마(司馬)를 겸하였던 그는 490년(동성왕 12) 동성왕의 요청에 따라 남제(南齊)에 파견되었는데, 무제(武帝)로부터 건위장군 광릉태수(建威將軍廣陵太守)직에 임명되었다. 그의 관직이 조선태수 및 광릉태수였던 사실을 주목하여 백제의 화북(華北) 진출과 관련짓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중국계 관직은 중국에 입조했을 때 백제사신이 받을 수 있는 대우의 확보를 위한 것으로서 하등의 실질적인 의미는 없다. 다만, 백제가 대중국외교에 한인계 백제인들을 줄곧 이용한 점을 생각할 때 ‘조선’·‘릉’은 그의 출신지가 북중국인 것과 관련있지 않을까 한다.
≪참고문헌≫ 三國史記, 魏書, 南齊書, 漢城末熊津時代의 百濟王位繼承과 王權의 性格(李道學, 韓國史硏究 50·51合輯, 1985).

다. 백우금관의 전설
이안사 즉 목조가 부친상을 당하여 좋은 묘지를 구하려고 사방을 헤매다가
어느날 노동에 이르러 나무 밑에서 휴식을 하고 있는데, 한 도승이 지나다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두루 살펴 인적이 없음을 확인한 후 “참 좋은 대지로다”하며 탄성을 올렸다.
이안사는 더욱 몸을 숨기고 다음 말에 귀를 기울였다.
"개토제에 소 일백마리를 잡아 제를 지내고, 관을 금으로 싸서 장사를 지내면 5대손이 기울어가는 이 나라를 제압하여 창업주가 될 명당이로다” 혼자말로 중얼거리던 도승은 수백보를 걸어가더니 보이지 않았다.
살림이 가난한 이안사는 소 일백마리와 금관을 마련할 길이 없었으므로, 생각하고 또 생각한 끝에 궁여지책으로 흰소 한 마리로 소 일백마리를 대신하고, 금관은 귀리짚이 황금빛이니 이것으로 대신하면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이안사는 처가에 흰 얼룩소가 있음을 알고 부인을 보내어 밭갈이를 한다고 하여 빌어 오는데 성공했다.
흰 소를 노동으로 끌고 가서 제물로 쓰고 관을 귀리짚으로 감아 안장을 하였다.
그 후 5대손에 도승의 예언대로 이성계가 고려를 제압하고 왕위에 올랐으니 1330년이다.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사적 제524호「삼척 준경묘⋅영경묘」, 2012.07.12) 됨에 따라 강원도 지정문화재의 지정을 해제함.

 

 
 

준경묘-영경묘(준경묘전경)
 

준경묘-영경묘(영경묘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