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 목 | 문화재자료 제28호 (금산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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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칭 | 고경명선생비(高敬命先生碑) |
분 류 | 기록유산 / 서각류/ 금석각류/ 비 |
수량/면적 | 1기 |
지정(등록)일 | 1984.05.17 |
소 재 지 | 충남 금산군 금성면 양전리 170 |
시 대 | |
소유자(소유단체) | 금산군 |
관리자(관리단체) | 금산군 |
상 세 문 의 | 충청남도 금산군 문화공보관광과 041-750-2384 |
일반설명
고경명 선생의 숭고한 죽음을 기리고 있는 비로, 비가 자리한 이곳은 그가 왜적과 장렬히 싸우다 전사한 곳이기도 하다.
고경명(1533∼1592) 선생은 조선시대 중기의 문신으로,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 서울이 함락되고 왕이 의주로 피신하였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는 고향인 장흥에서 6천여 명의 의병을 일으켜 의병장에 추대되었다. 황간, 영동 등지에 있던 왜적이 금산을 점령하고 장차 전주를 지나 호남지역을 칠 계획이라는 정보를 입수하여 충청의병장으로 있던 조헌에게 서신을 보내어 같이 형강을 건너 금산의 왜적을 칠 것을 제의하였다. 진산에 이르렀을 때 전주로 진군하던 왜병을 만나 용맹하게 싸우니 불리함을 깨달은 적은 서서히 후퇴하여 금산성으로 돌아갔다. 금산에 도착하여서는 방어사 곽영의 군과 합세하여 왜적을 공격하였으나, 눈벌에서 왜적에 포위되어 모든 군사와 함께 전사하고 말았다. 그의 죽음을 애통히 여긴 선조는 광주 표충사·금산의 중용사 등에 그의 사당을 모시게 하여, 충절을 기리도록 하였다. 비는 거북받침돌 위로 비몸을 새기고 높직한 머릿돌을 올린 모습으로, 거북의 머리는 앞을 향해 힘차게 들려있다. 조선 효종 27년(1712) 금산군수로 있던 여필관이 세운 것을, 일제 때 일본인이 파손시켜 없애버렸으나, 광복 후 후손들이 다시 세워 지금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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