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경남유형문화재

ㅁ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68호 표충사 영정 및 탱화

오늘의 쉼터 2010. 8. 23. 08:10




종 목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68호 
명 칭표충사 영정 및 탱화 (表忠寺影幀및幀畵)
분 류유물 / 일반회화/ 인물화/ 초상화
수량/면적영정25점탱화1점
지정(등록)일1990.01.16
소 재 지경남 밀양시 단장면 표충로 1338 (구천리)
시 대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표충사
관리자(관리단체)표충사


설명
 

표충사(表忠寺) 경내의 유물관과 사당에 일괄로 지정되어 전시되고 있는 초상화 25폭과 탱화 1폭이다. 탱화(幀畵)란 천이나 종이에 그림을 그려 액자나 족자 형태로 만들어 걸어두는 불화를 말하며, 일반적으로 절의 대웅전 안에 모시는 불상의 뒤쪽에 자리한다. 초상화는 사명대사(四溟大師)와 서산대사(西山大師) 등 25분의 상으로, 모두 거의 불화의 기법에 가까우며 비단 바탕에 채색하였고 식물성 천연고무 재질의 당채를 사용하였는데,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임진왜란을 통해 휴정(休靜)과 유정(惟政)을 위시한 승병의 공헌이 입증되자 그들을 중심으로 하는 특정 문중에 속하는 승려들의 진영(眞影)이 활발하게 조성되었다. 특히 휴정(休靜)·유정(惟政)·기허(騎虛)의 진영을 받들어 모심으로써 당시 불교계는 입지는 확대되었다. 그리고 조정에서도 국가적 사업으로 그들의 추모관인 표충사(表忠祠)를 세웠다. 18세기 이후에는 각 지방으로 문중이 크게 확산되어 해당 사찰과 직접 관련이 있는 고승이나 주지 등의 진영이 많이 조성되었다.  

 진영의 주인공은 다음과 같다.  

서산대사(西山大師) 사명대사(四溟大師) 기허대사(騎虛大師) 화담당대선사경화(華潭堂大禪師敬和) 기암당대선사(奇巖堂大禪師) 연파당대선사(蓮坡堂大禪師) 위당신헌(威堂申櫶) 덕암당부활(德庵堂富活) 학암당원정(鶴巖堂圓政) 월파당천유(月坡堂天有) 신암당영순(愼庵堂永詢) 인월당원민(印月堂圓旻) 용허당(聳虛堂) 경파당조안(景坡堂詔岸) 용악당대선사(龍岳堂大禪師) 묵담당영일(默潭堂永一) 밀암당대성(密庵堂大成) 관월도경수(冠月都景修) 혜운당격천(慧雲堂擊天) 설송당(雪松堂) 화월당봉우(華月堂奉宇) 태허대사(太虛大師) 포허당찬명지위(包虛堂璨溟之位) 금담당·환월당지위(錦潭堂·幻月堂之位) 약봉당영희지위(藥峯堂永希之位)이다. 


1. 서산대사(西山大師) : 중종 15년~선조 37년(1520~1604), 조선시대의 고승으로 자는 현응(玄應), 속성은 최(崔)씨, 아명은 여신(汝信), 본관은 완산(完山), 호는 서산(西山).청허(淸虛), 법명은 휴정(休靜), 세창(世昌)의 아들로 안주(安州) 출신이다. 지리산에 들어가 숭인선사(崇人禪師)의 제자가 되었으며 보우(普雨)의 뒤를 이어 봉은사(奉恩寺)의 주지가 되기도 하였다. 임진왜란 때에는 임금의 명을 받아 73세의 고령임에도 전국에서 승병 5,000명을 모집하여 총수(總帥)가 되어 많은 전공(戰功)을 세웠으며 제자인 사명대사(四溟大師)에게 병사(兵事)를 인계 하였고, 선종(禪宗)인 조계종(曺溪宗)을 일원화하는데 많은 영향을 끼쳤다.


2. 사명대사(四溟大師) : 중중 39년~광해군 2년(1544~1610), 조선시대의 고승이다. 자는 이환(離幻), 속성은 임(任)씨, 본관은 풍천(豊川), 호는 사명당(四溟堂), 송운(松雲), 종봉(鐘峯), 법명은 유정(惟政), 수성(守成)의 아들로 밀양(密陽) 출신이다. 서산대사(西山大師)의 제자로 임진왜란에 참전하여 혁혁한 전공(戰功)을 세운 의승대장(義僧大將)이였고 전쟁이 끝나고 나서는 임금의 명을 받아 일본에 강화사(講和使)로 가서 포로 3,000명을 송환해 오는 등 나라를 위하여 많은 공을 세운 구국성사(救國聖師)이다.


3. 기허대사(騎虛大師) : ?~선조 25년(?~1592), 조선시대 고승으로 속성은 박(朴)씨, 속명은 영규(靈圭), 본관은 밀양(密陽), 호는 기허당(騎虛堂), 공주 갑사(甲寺)에서 입산득도 하였고 서산대사(西山大師)의 제자로 임진왜란에 참전하여 큰 공을 세웠으나 금산(錦山)에서 전사(戰死)하였다.


4. 화담당대선사경화(華潭堂大禪師敬和) : 정조 10년~헌종 14년(1786~1848), 속성은 박(朴)씨, 호는 화담(華潭), 밀양 출신으로 18세때 양주의 화양상(華陽寺) 월화선사(月華禪師)를 은사로 득도하여 농월율봉(弄月栗峯) 선사에게 비구계를 받고, 해인사에 주석(住錫)하기도 하였으며 가평의 현등사(懸燈寺)에서 세수 63, 법랍 48세로 입적 하였다.


5. 기암당(奇巖堂) : 명종 7년~인조 12년(1552~1634), 호는 법견(法堅)이라 기록되어 있다. 영정의 제목은 "기암당대선사지진상(奇巖堂大禪師之眞像)".


6. 연파당(蓮坡堂) : 법호는 혜장(惠藏)이라 하였으며, 대둔사에 주석했던 조선시대 고승이다. 영정의 제목은 "연파당대선사상(蓮坡堂大禪師像)".


7. 위당신헌(威堂申櫶) : 순조 10년~고종 25년(1810~1888), 고종때의 대신으로 초명은 관호(觀浩), 자는 국빈(國賓), 호는 위당(威堂), 익호는 장숙(莊肅), 본관은 평산(平山), 의직(義直)의 아들로 금영대장을 거쳐 총융사, 병조판서, 참찬, 진무사(鎭撫使) 등을 역임 하였다. 고종 13년(1876년)에는 판중추부사로서 일본과 강화도조약을 체결하기도 하였다. 이 영정이 표충사(表忠寺)에 봉안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말년에는 불교에 귀의하여 표충사(表忠寺)에서 일생을 마친 것으로 보인다. 영정의 제목은 "위당거사상(威堂居士像)"『판서신공관호 53세상(判書申公觀浩 五十三歲像)』.


8. 덕암당부호(德庵堂富浩) : 칠종 5년 갑인년 윤7월(1854년) 영정조성. 영정의 제목은 "선교양종국일도대선사덕암당부호지진영(禪敎兩宗國一都大禪師德庵堂富浩之眞影)".


9. 학암당원정(鶴巖唐圓政) : 칠종 5년 갑인년 윤8월(1854년) 호생관(豪生館) 최북(崔北)이 영정을 그림. 영정의 제목은 "학암당대선사원정지진영(鶴巖堂大禪師圓政之眞影)".


10. 월파당천유(月坡堂天有) : 고종 3년(1866년) 영종조성. 영정의 제목은 "이현장사주대각등계월파당천유진영(移現創寺主大覺登階月坡堂天有眞影)".


11. 신암당영구(愼庵堂永鉤) : 기묘(己卯)2월 24일 출생. 무자(戊子)12월 12일 입적. 영정의 제목은 "국일도대선사신암당진상(國一都大禪師愼庵堂眞像)".
12. 인월당원민(印月堂圓旻) : 영정의 제목은 "대각등계인월당원민영(大覺登階印月堂圓旻影)".


13. 용허당(聳虛堂) : 영정의 제목은 "보원주국일도대선사용허당지진(補院主國一都大禪師聳虛堂之眞)".


14. 경파당조안(景坡堂詔岸) : 을축(乙丑) 2월 24일 문손(門孫) 호산(虎山)이 조성한, 영정의 제목은 "보원주경파당조안진영(保院主景坡堂詔岸眞影)".


15. 용악당(龍岳堂) : 영정의 제목은 "용악당대선사지진영(龍岳堂大禪師之眞影)".


16. 묵담당영일(默潭堂永一) : 영정의 제목은 "선교양종묵담당영일지진영(禪敎兩宗默潭堂永一之眞影)".


17. 밀암당대성(密庵堂大成) : 영정의 제목은 "선교양종밀암당대선사대성지진(禪敎兩宗密庵堂大禪師大成之眞)".


18. 관월도경수(冠月都景修) : 영정의 제목은 "관월도대선사경수지진(冠月都大禪師景修之眞)".


19. 혜운당격천(慧雲堂擊天) : 영정의 제목은 "화엄종주혜운당격천지진(華嚴宗主慧雲堂擊天之眞)".


20. 운송당(雲松堂) : 영정의 제목은 "선교양종국일도대선사운송당진영(禪敎兩宗國一都大禪師雲松堂眞影)".


21. 화월당봉우(華月堂奉宇) : 영정의 제목은 "추파삼세화월당봉우지진영(秋波三世華月堂奉宇之眞影)".


22. 태허대사(太虛大師) : 영정의 제목은 "태허대사상(太虛大師像)".


23. 포허당찬명지위(包虛堂璨溟之位) : 광무 2년(1898년) 7월 염(念)8일 조성한 영정의 제목은 "포허당찬명지위(包虛堂璨溟之位)"-(位目形額子) : 影禎代用


24. 금담당.환월당지위(錦潭堂.幻月堂之位) : 영정의 제목은 "대각등계금담당대선사지위(大覺登階錦潭堂大禪師之位)", "대각등계환월당대선사지위(大覺登階幻月堂大禪師之位)"-(位目形額子) : 影禎代用


25. 약봉당영희지위(藥峯堂永希之位) : 영정의 제목은 "선교양종국일도대선사약봉당영희지위(禪敎兩宗國一都大禪師藥峯堂永希之位)"-(位目形額子) : 影禎代用


26. 칠여래탱화(七如來幀畵 : 198cm×176cm) : 견본당채(絹本唐彩) 탱화(幀畵)로서 훼손이 심하던 것을 1990년 표충사(表忠寺)에서 복원 정비하여 유물관에 보존 전시하고 있다.
일곱여래는 시아괴회(施餓廥會)때에 창례(唱禮)하는 일곱여래를 말하는 것으로 ①보승여래(寶勝如來), ②다보여래(多寶如來), ③묘색신여래(妙色身如來), ④광박신여래(廣博身如來), ⑤이포외여래(離怖畏如來), ⑥감로왕여래(甘露王如來), ⑦아미타여래(阿彌陀如來)로 구분할 수 있다.
이 탱화(幀畵)는 주로 영가천도제(靈駕薦度齊) 행사시에 게양 설단(設壇)하여 사용하는 것이다.
또한 번(幡 : 성호(聖號)을 문자로 작성한 깃발 모양을 말하는데, 여기에서의 번은 칠여래를 말함)을 만들어서 영단(靈壇) 앞에 게양하고 칠여래(七如來)를 강림케 한다.


※ 표충사(表忠寺)에서 전하는 바에 따르면 사명대사(四溟大師)께서 임진왜란 당시에 원불(願佛 : 표충사 유물관 중앙에 안치되어 있는 관세음보살좌상)과 함께 이 칠여래탱화(七如來幀畵)를 모시고 다녔다고 하나, 이는 지금의 탱화와는 조성연대가 맞지 않으므로 그 당시의 탱화를 1738년(건륭 3년 12월)에 개모(改摹 : 본떠 다시 만듬) 한 것으로 추정된다.


서산대사 진영

사명대사 진영 

기허대사 진영 

칠여래탱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