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충북유형문화재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41호 삼세충효문 <해제>

오늘의 쉼터 2010. 7. 13. 20:26



종 목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41호
명 칭

삼세충효문 (三世忠孝門)

분 류유적건조물 / / 
수량/면적

1동(棟)

지 정 일1977.12.06~1984.12.31
소 재 지충북 청원군 내수읍 비중리 110-1번지
시 대조선시대
소 유 자나웅찬
관 리 자나웅찬

 

설명 

삼세충효문(三世忠孝門)은 조선 숙종(肅宗) 43년(1719)에 여진족과 싸우다 전사한 경흥부사(慶興府使) 충정공(忠貞公) 퇴수헌(退修軒) 나사종(羅嗣宗, 1440∼1491)의 충절을 기리어 세운 충신각(忠臣閣)과 인조(仁祖) 16년(1638)에 나운걸(羅云傑, 1456∼1493)과 그의 아들 나빈(羅濱, 1473∼1495), 나린(羅潾, 1475∼1495) 형제의 효성을 기리어 세운 삼효각(三孝閣)을 합하여 부르는 2개의 정려각이다. 나사종(羅嗣宗)은 성종(成宗) 22년(1491) 여진족이 기병(騎兵) 5천을 거느리고 변방에 처들어 왔을때 아군 50명을 이끌고 싸우다가 전사하였으며, 그의 아들 나운걸(羅云傑)은 여진정벌에 백의종군하였으나 부친의 원수를 갚지 못함을 비분하여 부친의 3년상을 마치는 날 자결하였고, 나운걸(羅云傑)의 아들 나빈(羅濱), 나린(羅潾) 형제도 효성이 깊어 수차례 여진정벌에 나섰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부친의 3년상이 끝나는 날에 역시 스스로 목숨을 끊어 3세대가 모두 기일(忌日)을 같이하는 충효의 선례를 남겼다. 나사종(羅嗣宗)은 숙종 43년(1717)에 여진정벌의 공으로 병조판서에 추증되고 충정(忠貞)이라는 시호가 내려졌으며, 나빈(羅濱)과 나린(羅潾)은 숙종 33년(1707)에 판서로 추증되었다. 마을 입구에 동향으로 세워져 있는 이 삼세충효문(三世忠孝門)은 충신각과 삼효각이 나란히 남아 있고 이들 둘레에 담장을 둘러 보호하고 있다. 

충청북도 기념물 제40호로 재지정되어 1984년12월31일 해지.




삼세충효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