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상식/메일 중에서

어느 노숙자의 기도

오늘의 쉼터 2010. 6. 16. 08:35

 

 

 

어느 노숙자의 기도

(충정로 사랑방에서 한동안 기거했던 어느 노숙인이 씀)

둥지를 잃은 집시에게는

찾아오는 밤이 두렵다.

 

타인이 보는 석양의 아름다움도
집시에게는 두려움의 그림자 일 뿐..


한때는

천방지축으로 일에 미쳐
하루 해가 아쉬었는데

모든것 잃어 버리고
사랑이란 이름으로 따로 매였던

 

피붙이들은 이산의 파편이 되어

가슴 저미는 회한을 안긴다.

 

 

 
 
 굶어 죽어도 얻어 먹는 한술 밥은
결코 사양 하겠노라 이를 깨물든 그 오기도
 
곱 끼니의 굼주림 앞에 무너지고
무료 급식소 대열에 서서...

행여 아는 이 조우 할까 조바심 하며
날짜 지난 신문지 로 얼굴 숨기며
 
아려 오는 가슴을 안고 숟가락 들고
목이 메는 아픔 으로 한 끼니를 만난다.
 
그 많든 술친구도
그렇게도 갈 곳이 많았던 만남들도
 
 






인생을 강등 당한 나에게
이제는 아무도 없다.
 
밤이두려운 것은 어린 아이만이 아니다.
50 평생의 끝 자리에서 잠자리를 걱정하며
 
석촌공원의 긴 의자에 맥없이 앉으니
만감의 상념이 눈 앞에서 춤춘다.
뒤엉킨 실타래 처럼...
난마의 세월들...
 
깡 소주를 벗 삼아 물 마시듯 벌컥 대고
수치심 잃어버린 육신을 아무데나 눕힌다.
 
빨렛줄 서너발 사서
청계산 소나무에 걸고 비겁한 생을 마감 하자니




물을 찍어 내는 지어미와 두 아이가
"안 돼! 아빠  안돼! 아빠 "한다.
 
그래, 이제 다시 시작 해야지

교만도 없고, 자랑도 없고
그저 주어진 생을 가야지

내달리다 넘어지지 말고
편하다고 주저앉지 말고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그날의 아름다움을 위해

걸어 가야지...
걸어 가야지...


(2010년 5월 22일자 조선일보에서)
 

'종합상식 > 메일 중에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크라이나 키예프의 도심 풍경  (0) 2010.06.26
복을 지니고 사는방법  (0) 2010.06.21
어려울때 필요한 것은  (0) 2010.06.16
베네치아 대운하 수상버스에서  (0) 2010.06.15
수원 화성(華城)  (0) 2010.0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