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노숙자의 기도
(충정로 사랑방에서 한동안 기거했던 어느 노숙인이 씀)
둥지를 잃은 집시에게는
찾아오는 밤이 두렵다.
타인이 보는 석양의 아름다움도
집시에게는 두려움의 그림자 일 뿐..
한때는
천방지축으로 일에 미쳐
하루 해가 아쉬었는데
모든것 잃어 버리고
사랑이란 이름으로 따로 매였던
피붙이들은 이산의 파편이 되어
가슴 저미는 회한을 안긴다.
행여 아는 이 조우 할까 조바심 하며
날짜 지난 신문지 로 얼굴 숨기며
목이 메는 아픔 으로 한 끼니를 만난다.
인생을 강등 당한 나에게
이제는 아무도 없다.
만감의 상념이 눈 앞에서 춤춘다.
뒤엉킨 실타래 처럼...
수치심 잃어버린 육신을 아무데나 눕힌다.
눈물을 찍어 내는 지어미와 두 아이가
그래, 이제 다시 시작 해야지
교만도 없고, 자랑도 없고
그저 주어진 생을 가야지
내달리다 넘어지지 말고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그날의 아름다움을 위해
걸어 가야지...
걸어 가야지...
(2010년 5월 22일자 조선일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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