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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전(春香傳)

오늘의 쉼터 2009. 5. 6. 21:27

춘향전(春香傳) 
 


  숙종대왕(肅宗大王=李朝十九世王,47年間在位) 즉위 초에 성덕이 넓으시사 성자성손(聖子聖孫)은 계계승승하사, 금고옥적(金鼓玉笛)은 요순(堯舜)의 태평시절이요, 의관과 문물과 우(禹) 임금과 탕(湯) 임금의 버금이라, 좌우 보필은 주석지신(柱石之臣=국가의 重任을 진 大臣)이요, 용양호위(龍 虎衛= 李朝 武官의 正三品)의 각위(各位)에는 간성지장(干城之將)이라. 조정에 흐르는 덕화, 향곡(鄕曲)에 퍼졌으니 사해에 굳은 기운이 원근에 어리어 있더라. 충신은 조정에 가득하고 효자와 열녀는 가가재(家家在)라. 미재미재(美哉美哉=아름답도다)라. 우순풍조(雨順風調)하니 함포고복(含哺鼓腹) 백성들은 처처에 격양가(擊壤歌)라.  
  
  이때 전라도 남원부(南原府)에 월매(月梅)라 하는 기생이 있으되, 삼남(三南)의 명기로서 일찍이 퇴기(退妓)하여 성씨(成氏)라는 양반을 데리고 세월을 보내되, 나이 바야흐로 사십이 넘었으나 일점 혈육이 없어 이로 한이 되어 장탄수심(長歎愁心)의 병이 되겠구나.  
  
  일일은 크게 깨쳐 옛사람을 생각하고 남편을 청입하여 공손히 하는 말이,  
  
  "들으시오. 전생에 무슨 은혜를 끼쳤던지 이 생에 부부되어, 창기 행실 다버리고 예모도 숭상하고 길쌈도 힘썼것만 무슨 죄가 이리 많아 일점 혈육 없으니, 육친무족(六親無族) 우리 신세 선영(先塋)의 향화 뉘 받들며, 죽은 뒤의 감장(監葬)을 어이하리. 명산대찰(名山大刹)에 불공이나 도드리어 남녀간 낳기만 하면 평생의 한을 풀 것이니 당신의 뜻이 어떠하시오."  
  
  성참판 하는 말이,  
  
  "일생 신세 생각하면 자네 말이 당연하나, 빌어서 자식은 낳을진댄 자식 없을 이 뉘 있으리오."  
  
  하니 월매가 대답하되,  
  
  "천하 대성(大聖) 공자님도 이구산에 빌으시었고, 정나라 정자산(鄭子産)은 우형산(右刑山)에 빌어서 낳았으며 우리 동방의 강산을 이룰진댄 명산대찰이 없을쏘냐. 경상도 웅천(熊川)의 주천의(朱天儀)는 늙도록 자녀 없어 최고봉(最高峰)에 빌었더니 대명천자(大明天子)나 계시사 대명천지 밝았으니 우리도 정성이나 드려 보사이다." 공든탑이 무너지며 심은 나무가 꺽일손가."  
   

  이날부터 목욕 재계 정히 하고 명산승지 찾아갈 때 오작교(烏鵲橋) 썩 나서서 좌우산천 둘러보니, 서북의 교룡산(蛟龍山)은 서북방을 막아 놓고, 동으로는 장림(長林=南原 近郊에 있는 숲 이름) 수풀 깊은 곳에 선원사(禪院寺) 은은히 보이고, 남으로는 지리산이 웅장한데, 그 가운데 요천수(蓼川水=南原 近郊의 江이름)는 일대장강 푸른 물이 되어 동남으로 둘렀으니 별유 건곤(乾坤)이 여기로다.  
  
  푸른 숲을 더위 잡고 산수를 밟아 들어가니 지리산이 예였구나, 반야봉 올라서서 사면을 둘러보니 명산대천이 완연하다.  
  
  상봉에 단(壇)을 모아 제물을 차려 놓고, 단 아래 엎드려서 천신만고 빌었더니, 산신님의 덕이신지 이때가 오월 오일 갑자시였는데, 한 꿈을 얻었으니 서기(瑞氣) 서리면서 오색이 영롱하더니 일위선녀가 청학을 타고 오는데, 머리에는 화관(花冠)이요, 몸에는 고운 옷을 입었다. 월패(月佩) 소리 쟁쟁하고, 손에 계화(桂花) 한 가지를 들고 당에 오르며 손들어 길게 읍하고 공손히 여짜오되,  
  
  "낙포(洛浦=落水의 女神)의 딸이었는데 하늘 복숭아를 진상코자 옥경(玉京=玉帝의 首都)에 나아갔다가 광한전에서 적송자(赤松子를=仙人名)를 만나 정회를 다 풀지 못하고 있을 즈음, 때에 늦었음이 죄가 되어 옥황상제께서 크게 노하시사 인간세계로 내쫓으시매 갈 바를 아지 못하였더니, 두류산(頭流山=智異山을 一名 頭流山이라고도 함) 신령께서 부인댁으로 지시하기로 왔사오니 어여삐 여기소서."  
  
  하며 품으로 달려오세.  
  
  학의 높은 울음소리는 그의 목이 긴 까닭이라 학의 울음에 놀라 깨니, 실로 남가일몽(南柯一夢=허영의 꿈)이라.  
  
  황홀한 정신을 진정하여 바깥양반과 꿈 이야기를 말하고, 천행으로 남자가 태어날까 기다렸더니 과영 그 달부터 태기 있어 열 달이 차매, 하루는 향기가 방안에 가득하여 오색구름이 빛나는데 혼미한 가운데 애기를 낳으니 한낱의 구슬 같은 딸이더라. 월매의 일구월심 그리던 마음에 아들은 아니지만 그만한 대로 소원을 이룬 셈이더라. 그 사랑하는 정경은 어찌다 말하리오. 이름을 춘향(春香)이라 부르면서, 손에잡은 보옥같이 길러내니 효행이 비길데 없고 어질고 착하기가 기린과 같더라. 칠팔 세가 되매 글 읽기에 마음을 붙여 예모정절(禮貌貞節)을 일삼으니, 춘향의 효행을 남원읍이 칭송치 않는 이 없더라.  
  
  이때 삼청동(三淸洞) 이한림(李翰林)이라 하는 양반이 있었으니, 그때의 명가요 충신의 후손이라.  
  
  하루는 전하께옵서 충효록(忠孝錄)을 올려 보시고, 충신과 효자를 가리어 내시어 지방관으로 임명하시는데, 이한림(李翰林)으로 하여금 과천(果川) 현감에서 금산(錦山) 군수를 제수하시었다가 다시 남원부사(南原府使)를 제수 하시니, 이한림이 사은(謝恩)하여 절하며 임금을 하직하고 내행을 데리고 남원부에 도임(到任)하여 민정을 잘 살피니, 사방에 일이 없고 지방의 백성들은 더디 옴을 칭송하더라. 탱평세월을 노래하는 노랫가락이 들리어 오고 시화 풍년(時和豊年)하고 백성이 효도하니 옛날 중국의 요(堯)임금 순(舜)임금 시절이라.  
  
  이때는 어느 때냐 하면 놀기 좋은 화창한 봄날이라. 제비와 나는 새들은 서로 수작하고 짝을 지어 쌍쌍이 날아들고 온갖 춘정(春精)을 다투는데, 남산에 꽃이 피니 북산도 붉어졌다.  
  
  천사만사의 수양버들 가지에 꾀꼬리는 벗을 부른다. 나무와 나무는 숲을 이루고 두견새 접동새는 다 지나가니 일년 중에 가장 아름다운 계절이라.  

  
  이때 사또 자제 이도령이 나이가 이팔이요, 풍채는 당나라의 잘 생긴 시인 두목지(杜牧之=唐의 詩人)와 같고, 도량은 푸른 바다 같고, 지헤는 활달하고, 문장은 이태백(李太白)이요 글씨는 왕희지(王羲之=唐의 文藝家)와 같았다. 하루는 방자를 불러 말하되,  
  
  "이 고을에 경치 좋은 곳이 어디냐? 시흥과 춘흥(春興)이 도도하니 절승경처를 말하여라."  
  
  방자놈이 여쭙기를,  
  
  "너 무식한 말이다. 옛날로부터 이 고장 문장재사가 절승한 강산을 구경하는 것은 풍월과 글짓는 데 근본이 되는 것이다. 신선도 두루 돌아 널리 보니 어이하여 부당하냐? 사마장경(司馬長卿= 前漢의 文藝家) 같은 인물은 남으로 강회(江淮)에 떳다가 큰 강을 거슬러 올라갈 제 미친 물결 거센 파도에 음풍(陰風) 부르짖음 예로부터 가르치니, 천지간 만일의 병화가 놀랍고 아름다운 것이 글 아닌 게 없다. 시중천자(時中天子) 이태백은 채석강(采石江)에서 놀고 있으매 적벽강(赤壁江) 추야월에서는 소동파(蘇東坡=宋의 文藝家)가 놀고 있고, 심양강 달 밝은 밤에 백낙천(白樂天=唐의 文藝家)이 놀고 있고, 보은(報恩) 속리산 문장대(文藏臺)에 세종대왕 노셨으니 아니 놀지는 못하리라."  
  
  이때 방자, 도련님의 뜻을 받아 사방 경치를 말하되,  
  
  "서울로 이를진댄 자문(紫問) 밖에 내달아 칠성암, 청련암(靑蓮庵), 세검정과 평양 연광정(練光亭), 대동루(大同樓), 모란봉, 양양의 낙산사, 보은 속리(俗離), 문장대 안의(安義) 수승대(搜勝臺), 진주 촉석루(矗石樓), 밀양의 영남루(嶺南樓)가 어떠한지 모르오나 전라도로 이를진대 태인(泰仁)의 평양정(平壤亭), 무주의 한풍루(寒風樓), 전주의 한벽루(寒碧樓) 좋사오나, 남원의 경치 들어보십시오.  
  
  동문 밖에 나가오면 관왕묘(關王廟)는 천고영웅 엄한 위풍 어제 오늘 같사옵고, 남문 밖에 나가오면 광한루(廣寒樓), 오작교, 영주각(瀛州閣)이 좋사옵고, 북문 밖에 나가오면 푸른 하늘에 금부용 꽃이 빼어나 괴팍하게 우뚝 섰으니 기암(奇巖) 둥실 교룡산성(蛟龍山城) 좋사오니 처분대로 가시이다."  
  
  도련님 이르는 말씀,  
  
  "이애야, 네 말을 들어보니까 광한루와 오작교가 절경인 모양이구나, 그리로 구경 가자."  
  
  도련님 거동 보소.  
  사또 앞에 들어가서 공손히 말씀하시기를,  
  
  "오늘 날씨 화창하오니 잠깐 나가 풍월이나 읊겠사오며 시의 운(韻)이나 생각고저, 성이나 한바퀴 돌아보고 오겠나이다."  
  
  사또 크게 기뻐하시며 허락하시되,  
  
  "남주(南州) 풍물을 구경하고 돌아오되 시제(詩題)를 생각하여라."  
  
  "아버님 가르치시는 대로 하오리다."  
  
  물러나와,  
  
  "방자야, 나귀 안장 지어라."  
   

  
  방자 분부듣고 나귀의 안장 짓는다. 나귀에 안장을 얹을 때 붉은 실로 만든 굴레와 좋은 채찍과 좋은 안장, 아름다운 언치, 황금으로 만든 자갈 청흥사 고운 굴레며 주락상모(珠絡象毛)를 덤썩 달아 층층다래 은잎 등자 호피(虎皮) 돋음의 전후걸이 줄방울을 염불법사(念佛法師) 염주 매듯 하여 놓고는  
  
  "나귀 등대하였소."  
  
  도련님 거동 보소. 옥안 선풍(仙風) 고운 얼굴, 전판(剪板) 같은 채 머리,  
곱게 벗어 밀기름에 잠재와 궁초댕기 석황 물려 맵시있게 잡아 땋고, 성천수주(成川水紬) 접동베 세백저(細白苧) 상침바지, 극상세목(極上細木) 겹버선에, 남갑사 대님 치고, 육사단(六紗緞) 겹배자 밀화단추 달아 입고 통행전을 무릎 아래 늦추 메고, 영초단(影稍緞) 허리띠, 모초단(毛稍緞) 도리낭(모양이 알꼴로 된 주머니), 당팔사 갖은 매듭 고를 내어 늦추 매고, 쌍문초(雙紋稍) 긴동정, 중추막에 도포 받쳐 흑사띠를 가슴 위로 눌러 매고 육분당혜(肉粉唐鞋) 끄을면서,  
  
  "나귀를 붙들어라!"  
  
  등자 딛고 선뜻 올라 뒤를 싸고 나오실 때, 금물 올린 호당선(胡唐扇=호.당에서 만든 부채)으로 일광을 가리우고, 관도(官道) 성남 넓은 길에 생기 있게 나갈 때, 취하여 양주(楊州)에 오던 두목지의 풍채런가. 시시오불(時時誤拂)하던 주랑(周郞)의 고음(顧音)이라, 향가자백(香街紫百)은 춘성(春城)안이요. 성안 백성 보는 자 뉘 아니 사랑하랴.  
  
  광한루에 얼른 올라 사면을 살펴보니 경개가 장히 좋다. 적성(赤城=현재의 순창군 적성) 아침날의 늦은 안개 끼어 있고, 녹수(綠樹)의 저문 봄은 화류동풍(花柳東風) 둘러 있다. 붉은 누각에 해 비치고 벽방(壁房)과 금전(錦殿)이 서로 영롱하여 임고대(臨高臺)를 일러 있고, 다락마루가 드높음은 광한루를 두고 하는 말이로다. 악양루(岳陽樓) 고소대(姑蘇臺)와 오초(吳楚)의 동남수(東南水)는 동정호(洞庭湖)로 흘러가고, 연자(燕子=중국에 있는 누각 이름) 서북의 팽택(彭澤=燕子樓가 있는곳)이 완연한데, 또 한곳 바라보니 백백홍홍이 난만한 속에서 앵무 공작이 날아들고, 산천경개 둘러 보니 예구분반(蘂丘紛畔) 송송 떡갈잎은 아주 춘풍을 못 이기어 흐늘흐늘, 폭포유수 시냇가의 계변화(溪邊花)는 빵긋빵긋, 낙락 장송은 울창하고 녹음과 향기로운 잡초가 봄꽃보다 나을 때로구나. 계수나무, 자단(紫壇) 모란, 벽도(碧桃)에 취한 사색, 장천 요천(蓼川=南原 郊外의 江 이름) 풍덩실 잠기어 있고, 또한 곳 바라보니 어떠한 여인이 봄새 울음과 같은 자태로 온갖춘정 이기지 못해 두견화 질끈 물어 보고, 옥수 나삼(羅杉) 반만 걷고 청산유수 맑은 물에 손도 씻고 발도  
씻고 물 마시며 양치하며 조약돌 덥석쥐어 버들가지 꾀꼬리를 희롱하니, 꾀꼬리를 깨워 일으킨다는 옛 시가 이 아니냐. 버들잎도 주루룩 훑어, 물에 훨훨 띄워 보고 백설 같은 희 나비 웅봉자접(雄蜂雌蝶)은 꽃 수염 물고 너울너울 춤을 춘다. 황금 같은 꾀꼬리는 숲숲에 날아든다.  
   

  
  광한 진경(眞景) 좋거니와 오작교가 더욱 좋다. 바야흐로 이르되 호남의 제일성(第一城)이라 하겠다. 오작교가 분명하면 견우직녀 어디 있나? 이런 승지(勝地)에 풍월이 없을쏘냐. 도련님이 글을 귀를 지었으니,  
  
  드높고 밝은 오작의 배에  
  광한루 옥섬들 고운 다락이라  
  누구냐 하늘위의 직녀란 별은  
  흥나는 오늘의 내가 견우일세  
  
  ( 高明烏鵲船 廣寒玉階樓  
  借問天上誰織女 至興今日我牽牛 )  
  
  이때 내아(內衙)에서 잡술상이 나오거늘 한잔 술 먹은 후에 통인 방자에게 물려 주고, 취흥이 도도하여 담배 피워 입에다 물고 이리저리 거닐 적에, 경처(景處)에 흥을 재워 충청도 곰산, 수영(水營) 보련암(寶蓮庵)을 자랑한댔자 이곳 경치를 당할 수 있으랴. 붉은 단(丹), 푸를 청(靑), 흰백(白), 붉은 홍(紅), 고몰고몰이 단청(丹靑) 버드나무 꾀꼬리가 짝 부르는 소리는 내 춘흥(春興)을 도와 준다. 노랑벌 흰나비 황나비도 향기 찾는 거동이다. 날아가고 날아오니 춘성(春城)의 안이요, 영주(瀛州=삼신산)는 바야흐로 봉래산(蓬來山)이 눈아래 가까우니, 물은 본시 은하수요, 경치도 잠깐 천상 옥경(玉京)과 같다. 옥경이 분명하면 월궁(月宮)의 항아(姮娥=月中仙女)가 없을쏘냐.  
  
  이때는 춘삼월이라 일렀으되, 오월 단오일이렸다. 일년 가운데 제일 좋은 시절이다. 이때 월매 딸 춘향이도 또한 시서 음률(詩書音律)이 능통하니, 천중절(天中節=五月五日)을 모를쏘냐. 그네를 뛰려고 향단이를 앞세우고 내려올 때, 난초 같이 고운 머리, 두 귀를 눌러 곱게 땋아 금봉비녀(금으로 봉황을 새겨서 만든 비녀)를 바로 꽂고 비단치마 두른 허리 다 피지 아니한 버들들이 힘없이 드리운 듯, 아름답고 고운 태도로 아장거려 흐늘거리며 가만가만 다닐 적에 장림(長林) 속으로 들어가니, 녹음방초 우거져 금잔디 좌르륵 깔린 곳에 황금 같은 꾀꼬리는 쌍쌍이 오고 갈제, 백 자 길이로 높이 매고 그네를 뛰려 할 제 수화유문(水禾溜紋) 초문장옷, 남방사 ㅎ단치마 훨훨 벗어 걸어 두고, 자주영초 수당혜(繡唐鞋)를 썩썩 벗어 던져 두고, 백장사 진솔속곳 턱밑에 훨씬 추고, 연숙마 그네줄을 섬섬옥수(여자의 정결한 손) 넌짓 들어 양수에 갈라 잡고, 백릉버선 두 발길로 살짝 올라 발 구를 제, 세류 같은 고운 몸이 단정히 노니는데 뒤단장 옥비녀 은죽절(銀竹節)과 앞치례 볼 것 같으면 밀화장도(密花粧刀), 옥장도며 광원사(비단이름) 겹저고리 제섹 고름의 모양이 난다.  
  
  "향단아, 밀어라!"  
  
  한 번 힘을 주며 두 번을 굴러 힘을 주니 발밑의 가는 티끌 바람따라 펄펄, 앞 뒤 점점 멀어가니 머리 위의 나뭇잎은 몸을 따라 흔들흔들, 오고 갈 제 살펴보니 녹음 속의 붉은 치맛자락이 바람결에 내비치니, 구만장천(九萬長天) 흰구름 속에 번갯불이 비치는 듯 문득 보면 앞에 있더니 문득 다시 뒤에 있네. 앞에 얼른 하는 양은 가벼운 저 제비가 도화일점(桃花一點), 떨어질제 차려하고, 쫓아가듯 뒤로 번듯하는 양은 광풍에 놀란 나비 짝을 잃고 날아가다 돌치는 듯, 무산선녀(巫山仙女=中國 楚나라왕이 만났다는 仙女) 구름 타고 양대(陽臺) 위에 내리는 듯, 나뭇잎도 물어보고 꽃도 질근 꺾어 머리에다 실근실근 하며,  
  
  "이애 향단아! 그네 바람이 독해서 정신이 어질어질하다. 그네를 붙들어  
라."  
  
  붙들려고 무수히 진퇴하여 한창 이렇게 노닐 적에, 시냇가 반석 위에 옥비녀 떨어져 쟁그렁 소리나니,  
  
  "비녀 비녀!"  
  
  하는 소리, 산호채(珊瑚로 만든 머리꽂이)를 들어 옥소반을 깨치는 듯, 그 태도 그 형용은 세상인물이 아니로다.  
   
  

  
  제비는 삼춘(三春)에 날아오고 날아가자, 이도령 마음이 울적하고 정신이 아찔하여 별 생각이 다 나는 것이다. 혼자말로 중얼거리며,  
  
  "오호(五湖=중국 太湖 근방에 있는 다석개의 호수)에 편주를 타고 범소백(范小伯=吳나라를 滅하고 西施湖에서 사라졌다.)을 쫓았으니, 서시(西施)도 올 리 없고, 해성(垓城) 달밤에 슬픈 노래로 패왕을 이별하던 우미인(虞美人)도 올 리 없고, 단봉궐(丹鳳闕) 하직하고 백룡퇴로 간 연후에 독류청총(獨留靑塚) 하였으니 왕소군(王昭君)도 올 리 없고, 장신궁(長信宮) 깊이 닫고, 백두음(白頭吟)을 읊었으니 반첩여(班 )도 올 리 없고, 소양궁(昭陽宮) 아침 날에 시중들고 돌아오니 조비연(趙飛燕)도 올 리 없다. 낙포(洛浦)의 선녀란 말인가 무산(巫山)의 선녀란 말인가."  
  
  도련님은 흔이 중천에 날아 일신이 고단하다. 진실로 미흔지인(未婚之人)이로다.  
  
  "통인(通引)아!"  
  
  "예!"  
  
  "저 건너 화류중에 오락가락 희뜩희뜩 얼른얼른 하는게 무엇인지 자세히 보고 오너라."  
  
  통인이 살펴보고 말하기를,  
  
  "다른 무엇이 아니오라, 이 고을 기생이던 월매란 사람의 딸 춘향이란 계집아이입니다."  
  
  도련님이 엉겁결에 하는 말이,  
  
  "장히 좋다. 훌륭하다."  
  
  통인이 말하기를,  
  
  "제 어미는 기생이오나 춘향이는 도도하여 기생구실 마다하고 백화초엽(百花草葉)에 글자도 생각하고, 여공재질(女工才質)이며 문장을 겸전(兼全)하여 여염집 처자와 다름이 없나이다."  
  
  도령이 허허 웃고 방자를 불러서 분부하기를,  
  
  "들은 즉 기생의 딸이라니 급히 가 불러오라."  
  
  방자놈이 대답하기를,  
  
  "흰 눈 같은 살결에 꽃 같은 얼굴이 남방에 유명키로 방첨사(方僉使=관찰사의 별명) 병부사(兵府使), 군수, 현감, 관장(官長)님네 엄지 손가락이 두 뼘 가웃씩 되는 양반 외입장 이들도 무수히 보려하되, 장강(莊姜=周文王의 어머니)의 생과 임사(任 )의 덕행이며, 이두(李杜=李太白과 杜甫)의 문필이며 태사(太 )의 화순하는 마음과 이비(二妃)의 정절을 품었으니, 금천하의 절이요, 만고 여중(女中)의 군자이오니 황공하온 말씀으로 함부로 다루기 어렵내다.  
  도령이 대소하고,  
  
  "방자야, 네가 물건이란 각각 주인이 있음을 모르느냐? 형산(荊山=중국에 있는 良玉의 所産地)의 백옥과 여수(麗水=中國 雲甫에 있는 내황금의 소산지)의 황금이 임자가 각각 있느니라. 잔말 말고 불러오라."  
  
   
  
  방자 분부를 듣고 춘향 초래 건너갈 때에, 맵시 있는 방자 녀석 서왕모(西王母=중국 고대의 仙女) 요지의 잔치에 편지 전하던 청조(靑鳥) 같이, 이리저리 건너가서,  
  
  "여봐라, 이애 춘향아."  
  
  하고 부르는 소리에 춘향이 깜짝 놀라,  
  
  "무슨 소리를 그 따위로 질러 사람의 정신을 놀라게 하느냐."  
  
  "이애야 말 말아라, 일이 났다."  
  
  "일이란 무슨 일?"  
  
  "사또 자제 도련님이 광한루에 오셨다가 너 노는 모양 보고 불러 오란 영이 났다."  
  
  춘향이 화를 내어,  
  
  "네가 미친 자식이다. 도련님이 어찌 나를 알아서 부른단 말이냐? 이 자식이 네가 내 말을 <종달새가 열씨 까듯>하였나 보다."  
  
  "아니다. 내가 네 말을 할 리 없으되, 네가 그르지 내가 그르냐. 너 그른 내력을 들어 보아라. 계집아이 행실로 추천을 할 양이면 네 집 후원 담장 안에 줄을 매고, 남이 알까 모를까 은근히 매고 추천하는 게 도리가 당연하다. 광한루 머지않고 또한 이곳을 논할진대 녹음방초 승화시라, 방초는 푸르른데 버들은 초록장 두르고 뒷내의 버들은 유록장 둘러 한가지 늘어지고, 또 한 가지 펑퍼져 광풍이 겨워 흐늘흐늘 춤을 추는데 광한루 구경처에 그네를 매고 네가 뛰제 외씨 같은 두 발길로 백운간에 노닐적에 홍상자락 펄펄, 백방사(白紡絲) 송곳가래 동남풍에 펄렁펄렁, 박속 같은 네 살 걸이 백운간에 희뜩희뜩, 도련님이 보시고 너를 부르실제 내가 무슨 말을 한단 말이냐. 잔말 말고 건너 가자."  
  
  춘향이 대답하되,  
  
  "네 말이 당연하나 오늘이 단오일이다. 비단 나뿐이랴. 다른 집 처자들도 예서 함께 추천 하였으며 그런 뿐 아니라 또 설혹 내 말을 할지라도 내가 지금 기적에 있는 바도 아니거늘 여염 사람을 함부로 부를 일도 없고, 부른대로 갈리도 없다. 당초에 네가 말을 잘못 들은 모양이다."  
  
  방자 경우에 빠져 광한루로 다시 돌아와 도련님께 여짜오니 도련님 그 말 듣고,  
  
  "기특한 사람일다. 말인즉 바른 말이로되 다시 가서 말을 하되 이리이리 하여라."  
   

  
  방자 전갈 모아 춘향에게 건너가니 그 사이에 제집으로 돌아갔거늘, 저의 집을 찾아가니 모녀간 마주앉아 점심이 방장이라. 방자 들어가니,  
  
  "너 왜 또 오느냐?"  
  
  "황송타, 도련님이 다시 전갈하시더라. <내가 너를 기생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들으니 네가 글을 잘 한다기로 청하는 것이니, 여염집에 있는 처녀 불러 보는 것이 소문에 괴이하기는 하나, 험으로 아지 말고 잠깐 와 다녀 가라>하시더라."  
  
  춘향의 도량한 뜻 연분되랴고 그랬던지, 홀연히 생각하니 갈마음이 나되 모친의 뜻을 몰라 묵묵히 한참이나 말 않고 앉았더니, 춘향모 썩 나앉으며 정신없게 말하되,  
  
  "꿈이라 하는 것이 아주 전혀 허사가 아닌 모양이다. 간밤에 끔을 꾸니 난데 없는 청룡 한 마리 벽도못(碧桃池)에 잠겨 보이기에, 무슨 좋은 일이 있을까 하였더니, 우연한 일이 아니다, 또한 들으니 사또 자제 도련님이 이름이 몽룡이라 하니 꿈 몽자 용 용자 신통하게 맞추었다. 그러나 저러나 양반이 부르시는데 아니 갈 수 있느냐. 잠깐 가서 다녀오라."  
  
  춘향이가 그제야 못 이기는 체하고 겨우 일어나 광한루로 건너갈 제 대명전 대들보에 명매기 걸음으로, 양자 마당의 씨암탉 걸음으로, 백모래밭에 금자라 걸음으로 , 월태화용(月態花容) 도운 태도 연보로 건너갈 제 흐늘흐늘 월나라의 서시가 토성습보(土城習步)하던 걸음으로 흐늘거려 건너올 제, 도련님 난간에 절반만 비껴 서서 폈다 굽혔다 하며 바라보니 춘향이가 건너오는데, 광한루에 가까워진지라 도련님 좋아라 하고 자세히 살펴보니 , 요요정정(妖妖貞靜)하여 월태화용이 세상에 무쌍이고, 얼굴이 조촐하니 청강에 노는 학이 설월(雪月)에 비친 것 같고 , 붉은 입술과 흰 이가 반쯤 열리니 별 같기도 하고 구슬 같기도 하다. 연지를 품은 듯 아래 위로 고운 맵시 어린 안개 석양에 비치는 듯, 푸른 치마 아롱지니 무늬는 은하수의 물결과 같다. 연보(蓮步)를 정히 옮겨 천연히 다락에 올라 부끄러이 서 있거늘 통인 불러,  
  
  "앉으라고 일러라."  
  
  춘향이 고운 태도 얼굴을 단정히 하여 앉은 모습 자세히 살펴보니 백석(白石) 창파 새로 내린 비 뒤에 목욕하고 앉은 제비 사람을 보고 놀래는 듯, 별로 단장한 일 없이 천연한 국색(國色)이라. 옥안을 상대하니 구름 사이의 명월과 같고, 붉은 입술을 반쯤 여니 수중의 연꽃과 흡사하다. 신선은 내 알 수 없으나 영주에서 놀던 선녀가 남원에 귀양와서 사니, 월궁에 모여 놀던 선녀가 벗 한 사람을 잃었구나. 네 얼굴 네 태도는 세상인물이 아니로다.  
  
   
  
  이때 춘향이 추파를 잠깐 들어 이도령을 살펴보니, 이 세상의 호걸이요, 진세(塵世)의 기남자였다. 이마가 높았으니 소년공명 할 것이요, 이마와 턱과 코와 좌우의 광대가 조화를 이루었으니 보국 충신 될 것이니, 마음에 흠모하여 아미를 숙이고 무릎을 여미며 단정히 앉을 뿐이었다.  
  이도령이 입을 열어,  
  
  "성현도 성이 같으면 장가가지 않는다 하였으니, 네 성은 무엇이며 나이는 몇 살이뇨."  
  
  "성은 성씨이옵고 나이는 열 여섯이로소이다."  
  
  이도령의 거동을 보라.  
  
  "허허 그 말 반갑구나. 네 나이 들어보니 나와 동갑 이팔이요, 성씨를 들어 보니 나와 천정연분 분명하고나, 이성지합(李成之合) 좋은 연분 평생 동락하여 보자, 너의 부모 다 계시냐?"  
  
  "편모 슬하로소이다."  
  
  "몇 형제나 되느냐?"  
  
  "육십당년 나의 모친 무남독녀 나 하나요."  
  
  "너도 남의 집 귀한 딸이로구나. 천정하신 연분으로 우리 둘이 만났으니, 만년락(萬年樂)을 이뤄 보자."  
  
  춘향이 거동을 보라. 눈썹을 쭝그리며 붉은 입을 반쯤 열어, 가는 목쪽을 겨우 열고 옥성(玉聲)으로 말하는 것이렸다.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아니하고 열녀는 두지아비를 바꾸지 않는다는데, 도련님은 귀공자요 소녀는 천첩이로라, 한 번 정을 맡긴 연후에 인하여 버리시면 일편단심 이내 마음 독수공방 홀로 누워 우는 한은 이내 신세 내 아니면 누가 얄랴, 그런 분부 다시는 마옵소서."  
  
  이도령 이른 말이,  
  
  "네 말을 들어보니 어이 아니 기특하랴. 우리 둘이 인연 맺을 때 금석(金石) 맹약 맺으리라. 네 집이 어드메냐?"  
  
  춘향이 여짜오되,  
  
  "방자 불러 물으소서."  
  
  이도령 허허 웃고,  
  
  "내 너더러 묻는 말이 허황하고나! 방자야!"  
  
  "예!"  
  
  "춘향의 집을 네 일러라."  
  
  방자 손을 넌지시 들어 가리키는데,  
  
  "저기 저 건너, 동산은 울울하고 연못은 청정한데, 양어생풍(養魚生風)하고 그 가운데 기화요초(琪花瑤草=仙界의 화초) 난만하여 나무 나무에 앉은 새는 호사를 자랑하고 바위 위의 굽은 솔은 청풍이 건 듯 부니 늦은 용이 꿈틀거리는 듯, 집앞의 버드나무 유사무사(有絲無絲) 같은 양류 가지요, 들축 죽백 전나무며, 그 가운데 은행나무는 음양을 따라 마주 서고, 초당 문전에 오동, 대추나무, 깊은 산중 물푸레나무, 도포, 다래, 으름 덩굴 휘휘친친 감겨 담장 밖에 우뚝 솟았는데 송정(松亭) 죽림 두 사이로 은은히 보이는 것이 춘향의 집이오이다."  
  도련님이 이른 말이,  
  
  "장원(墻苑)이 정결하고 송죽이 울울하니 여자의 절개 행실을 가히 알 만하고나."  
  
  춘향이 일어나며 부끄러이 말하기를,  
  
  "시속 인심 고약하니 그만 놀고 가겠내다."  
  
  도련님 그 말 듣고,  
  
  "기특하다. 그럴 듯한 일이로다. 오늘 밤 퇴령(退令) 후에 너의 집에 갈 것이니 괄시나 부디 마라."  
  
  춘향이 대답하되,  
  
  "나도 몰라요."  
  
  "네가 모르면 쓰겠느냐. 잘 가거라. 금야에 상봉하자."  
  
  누각에서 내려 건너가니 춘향모 마조 나와,  
  
  "애고 내 딸 이제 다녀오냐. 그래 도련님이 무엇이라 하시더냐?"  
  
  "무엇이라 하여요. 조금 앉았다가 가겠노라 하고 일어나니, 오늘 밤에 우리 집에 오시마 하옵데다."  
  
  "그래 어찌 대답하였느냐?"  
  
  "모른다 하였지요."  
  
  "잘 하였다."  
   
  
  이때 도련님이 춘향을 애연히 보낸 후에 잊을수 없는 생각둘 데가 없어 책방으로 돌아와 만사에 뜻이 없고 다만 생각은 춘향뿐이었다. 말소리 귀에 쟁쟁하고 고운 태도 눈에 삼삼하여 해지기만 기다리는데 방자를 불러  
  
  "해가 어느 때나 되었느냐?"  
  
  "동쪽에 이제 아귀 트나이다."  
  
  도련님이 크게 노하여,  
  
  "이놈 괘씸한 놈, 서으로 지는 해가 동으로 도로 가랴. 다시금 살펴보라."  
  
  이윽고 방자 여짜오대,  
  
  "해는 떨어져 함지(咸地=太陽이 목욕하는 곳)에 황혼이 되고 달은 동령에 솟사옵니다."  
  
  저녁밥이 맛이 없어 전전반측(輾轉反側) 어이하리. "퇴령(退令)을 기다리라."하고 서책을 보려할 제, 책상을 앞에 놓고 서책을 읽어가는데 중용, 대학, 논어, 맹자, 시전, 주역이며, 고문진보, 통사략(通史略)과 이백, 두시, 천자까지 내어놓고 글을 읽는데 시전(詩傳)이라. <관관저구(關關雎鳩) 재하지주(在河之州)요, 요조숙녀(窈窕淑女)는 군자호구(君子好逑)로다.>  
  
  "서로 소리를 바꾸어 우는 정경이 새는 물가에서 노니는도다. 아름다운 여인은 군자의 좋은 짝이로다. 아서라, 그 글도 못 읽겠다."  
  
  대학을 읽는데,  
  
  "대학의 길을 명명한 덕에 있으며 신민(新民)에게 있으며 춘향에게도 있도다. 그 글도 못 읽겠다."  
  
  주역을 읽는데,  
  
  "원(元)은 형(亨) 코 정(貞)고 춘향이 코는 딱 댄코 좋고 하니라, 그 글도 못 읽겠다."  
  
  "등왕각(藤王閣)이라 - 남창(南昌)은 고군(故郡)이요 홍도(紅都)는 신부(新府)로다. 옳다. 그글 되었다."  
  
  맹자 읽을새,  
  
  "맹자께서 양혜왕을 보신대 왕왈 수( ) 천리를 머다 않다 온다. 하시니 춘향이 모시러 오시니까?"  
  
  사략을 읽는데,  
  
  "태고라 천황씨도 이(以) 쑥떡으로 왕하여 세시섭제(歲起攝提)하니 무위이화(無爲而化)하시다 하여 형제 십일 인이 각각 일만 팔천 세를 누리시다."  
  
  방자가 또 여짜오되,  
  
  "천황씨가 목덕(木德)으로 왕이란 말은 들었으되 쑥떡으로 왕이란 말은 금시 초문이오."  
  
  "이자식 네 모른다. 천황씨는 일만 팔천 세를 살던 양반이라 이가 단단하여 목덕을 잘 자셨거니와 시속의 선배들은 목떡을 먹겠느냐? 공자님께옵서 후생을 생각하사 명륜당에 현몽하고 <시속 선배들은 이가 부족하여 목떡 못 먹기로 물씬물씬한 쑥떡으로 하라> 하여 삼백 육십주 향교에 통문(通文)하고 쑥떡으로 고쳤느니라."  
  
  방자 듣다가 말하되,  
  
  "여보 하느님이 들으시면 깜짝 놀라실 말도 듣겠습니다."  
  
  또 적벽부(赤壁賦)를 들여 놓고,  
  
  "임술(壬戌)지추 칠월기망에 소자(蘇子)가 객으로 더불어 배를 띄워 적벽의 아래에 놀새 청풍은 서서히 불고 물결은 일지 않더라. 아서라, 그 글도 못 읽겠다."  
   
  
  
  천자를 읽을새,  
  
  "하늘 천 따 지."  
  
  방자 듣고,  
  
  "여보 도련님, 점잖은 분이 천자는 왠일이오?"  
  
  "천자라 하는 글이 칠서(七書=四書三經)의 본문이라. 양나라 주사봉(周捨奉) 주흥사(周興嗣)가 하룻밤에 이 글을 짓고 머리가 희였기로 책 이름이 백수문(白首文)이라 하니라. 낱낱이 새겨보면 뼈똥쌀 일이 많으니라."  
  
  "소인놈도 천자 속은 아옵니다."  
  
  "네가 알더란 말이냐?"  
  
  "알다 뿐이겠소."  
  
  "안다 하니 읽어보라."  
  
  "예 들으시오. 높고 높은 하늘 천, 깊고 깊은 따지, 홰홰친친 가물 현, 불타졌다 누를 황."  
  
  "예 이놈 상놈은 적실하다. 이놈 어디서 장타령하는 놈의 말을 들었구나. 내 읽을 테니 들어 보아라. 하늘이 자시에 열려 하늘을 나으니 태극이 광대(廣大) 하늘 천, 땅시 축시에 개벽하니 오행과 팔괘로 따 지, 삼시삼천 공(空)은 다시 공인 인심지시(人心指示) 가물 현, 이십팔숙(二十八宿), 금목수화토(金木水火土)의 정색(正色) 누를 황(黃), 우주일월중화(宇宙日月重華)하니 옥우쟁영(玉宇觴嶸) 집 우(宇), 연대국도 흥성쇠(年大國都興盛衰), 옛은 가고 이제는 오니 집 주(宙), 우치홍수(禹治洪水=우임금이 홍수를 다스림) 기자 추에 홍범구주(洪範九疇) 넓을 홍(洪), 삼황오제(三黃五帝) 붕(崩) 하신 후 난신적자(亂臣賊子) 거칠 황(荒), 동방이 장차 계명키로 고고천변 일륜홍( 天邊日輪紅) 번듯솟아 날 일(日) 억조창생, 격앙가에 강구연월(康衢煙月)의 달 월(月), 한심미월(寒心微月) 때때로 불어나 삼오일야(三五日夜)에 찰 영(盈), 세상만사 생각하니 달 빛과 같은지라 십오야 밝은 달이 기망(旣望)부터 기울 책(책), 이십팔숙부터 하도낙서(何圖洛書) 버린 법(法), 일월성신 별 진(辰), 가련금야 숙창가(可憐今夜宿娼家)라 원앙금칭의 잘 숙(宿), 절대가인 좋은 풍류 나열춘추(羅列春秋)의 버릴 열(列), 의의월색(依依月色) 야삼경의 만단정회(萬端情懷) 베풀 장(張), 오늘 찬 바람이 소슬히 불어오니 침실에 들어라 찰 한(寒), 베개가 높거던 내 팔을 베러 이마만큼 오너라 올 래(來), 에라 후리쳐 질끈 안고 폼에 드니 설한풍에도 더울 서(暑), 침실이 덥거든 음풍(陰風)을 취하여 이리저리 갈 왕(往), 불한불열(不寒不熱) 어느 때냐 엽낙 오동 가을 추(秋), 백발이 장차 우거지니 소변풍도를 거둘 수(收), 낙목한풍(落木寒風) 찬 바람 백운강산의 겨울 동(冬), 자나깨나 잊지 못할 우리 사랑 규중심처에 감출 장(藏), 부용(芙蓉)이 지난밤의 가는 비에 광윤유태(光潤有態) 부를 윤(潤), 이러한 고운 태도 평생을 보고도 남을 여(餘), 백년기약 깊은 맹세 만경창파 이룰 성(成), 이리저리 노닐 적에 부지세월(不知歲月) 햇세(歲), 조강지처 불한당 아내 박대 못하느니 대전통편(大典通編) 법증 률(律), 군자호구(君子好逑)이 아니냐. 춘향 입에 내 입을 한데다 대고 쪽쪽 빠니 법중여(呂)자가 이 아니냐. 애고애고 보고지고."  
   
  
  소리를 크게 질러 놓으니 이때 사또가 저녁 진지를 잡수시고 식곤증(食困症)이 나셔서 평상에 취침하시다가,  
  
  "애고 애고 보고지고."  
  
  소리에 깜짝 놀라,  
  
  "이리 오너라."  
  
  "예!"  
  
  "책방에서 누가 생침을 맞느냐. 신다리를 주물렀느냐? 알아 들여라."  
  
  통인이 들어가,  
  
  "도련님 웬 목통이오? 고함소리에 사또께서 놀라시사 엄문하라 하옵시니 어찌하오리까?"  
  
  "딱한 일이다. 남의 집 늙은이는 이농증(耳聾症)도 있느니라마는 귀 너무 밝은 것도 예삿일 아니로구나."  
  
  도련님 크게 놀라,  
  
  "이대로 여쭈어라. 내가 논어라는 글을 읽다가 슬프다 나의 도가 오래 된지라 꿈에 주공을 뵙지 못하여 나도 이 대목을 보다가 나도 주공을 뵈오면 그리하여 볼까 하여 흥취로 소리가 높아졌으니, 너 그래로만 여쭈어라."  
  
  통인이 들어가 그대로 여쭈니 사또는 도련님께 승벽(勝癖)이 있음을 크게 기꺼워 하여,  
  
  "이리 오너라! 책방에 가서 목랑청(睦郞廳)을 가만히 오시래라."  
  
  낭청이 들어오는데 이 양반이 어찌 고리게 생기었던지 체신머리가 없는 걸음으로 조심없이 덤썩 들었던 것이라.  
  
  "사또 그새 심심하시지요?"  
  
  "아 괜치 않네. 할말이 있네. 우리 피차 고우(故友)로서 동문수업(同門修業) 하였거니와 어릴 때 글 읽기처럼 싫은 것이 없건마는 우리 아이 시흥(詩興)을 보니 어이 아니 즐겁손가."  
  
  이 양반은 아는지 모르는지 하여간 대답하는 것이었다.  
  
  "아이 때 글 읽기처럼 싫은 게 어디 있으리요."  
  
  "읽기가 싫으면 잠도 오고 꾀가 많아지지. 이 아이는 글읽기를 시작하면 주야를 가리지 않고 쓰고 한단 말이여."  
  
  "예 그러하옵니다."  
  
  "배운 바 없어도 필재가 대단하지."  
  
  "그렇지요."  
  
  "점 하나만 툭 찍어도 고봉투석(高蜂投石=한문 글자의 좋은 필법) 같고, 한 일(一)을 그어 놓으면 천리진운(天理陳雲)이요, 갓머리는 작두첨(雀頭添=획의 모양이 참새 머리 같아야 한다는 말)이요, 필법을 논할지면 풍랑뇌전(風浪雷電)이요, 내리 그어 치는 획은 노송도괘절벽(老松倒 絶壁)이라. 창과(戈)로 이를 진댄 바른 등(藤) 넝쿨같이 뻗어갔네, 도리깨 치는 데는 성낸 손우 끝같고 기운이 부족하면 발길로 툭 차 올려도 획대로 되나니."  
  
  "글씨를 가만히 보오면 획은 획대로 되옵디다."  
  
  "글쎄 들어 보세. 저 아이 아홉 살 먹었을 제 서울집 뜰에 늙은 매화가 있는 고로 매화 나무를 두고 글을 지으라 하였더니 잠시 지었으되 정성 들인 것과 필요한 것만을 간추리는 솜씨가 대단하여 한 번 본 것은 문득 기억 하였으니 정부의 당당한 명사가 될 것이요, 눈을 남을 돌리면서 북쪽을 돌아보며 춘추의 한 수를 읊었데그려."  
  
  "잘래 정승을 하오리다."  
  
  사또 너무 감격하여,  
  
  "정승이야 어찌 바랄 것이겠나마는 내 생전에 급제는 쉬할 게고 급제만 쉽게 하면 육품의 벼슬에 오르는 것이야 어련히 하겠나."  
  
  "아니오, 그리 할 말씀이 아니오라 정승을 못하면 장승(長丞=나무로 人形을 새겨 里數를 표하는 標本)이라도 하지요."  
  
  사또가 호령하되,  
  
  "자네 뉘 말로 알고 대답을 그리 하는가?"  
  
  "대답은 하였사오나 뉘 말인지는 모릅지요."  
  
  그렇다고 하였으되 그게 또 다 거짓말이었다.  
   

  
  이때 이도령은 퇴령(退令) 놓기를 기다리다가,  
  
  "방자야!"  
  
  "예!"  
  
  "퇴령 놓았나 보아라."  
  
  "아직 아니 놓았소."  
  
  조금 있더니,  
  
  "하인 불러라."  
  
  퇴령 소리 길게 나니,  
  
  "좋다. 좋다. 옳다. 옳다. 방자야 초롱에 불 밝혀라."  
  
  통인 하나 뒤를 따라 춘향의 집으로 건너 갈 때 자취없이 가만 가만 걸으면서,  
  
  "방자야, 상방(上房)에 불 비친다. 등롱을 옆으로 감춰라!"  
  
  삼문 밖에 썩 나서니 좁은 길 사이에는 월색이 영롱하고 꽃 사이에 푸른 버들 몇 번이나 꺾었으며 투기(鬪技) 하는 소년 아이들은 밤에 청루(靑樓)에 들어갔으니 지체말고 어서 가자. 그렁저렁 당도하니 좋은 이 밤은 죽은 듯 고요한데 가기물색(佳期物色)이 아니냐. 가소롭다. 어주자(漁舟子)는 도원(桃源) 길을 모르던가. 춘향의 문전에 당도하니 인적은 드물고 월색은 삼경이더라. 뛰는 고기는 출몰하고 대접 같은 금붕어는 임을 보고 반기는 듯, 월하의 두루미도 흥에 겨워 짝을 부른다.  
  
  이때 춘향이 칠현금(七絃琴) 비껴 안고 남풍시(南風詩)를 희롱하다가 침석에서 졸더니 방자가 안으로 들어가되 개가 짖을까 염려하여 자취없이 가만가만 춘향 방 영창(影窓) 밑에 가만히 살짝 들어가서,  
  
  "이애 춘향아, 잠들었냐?"  
  
  춘향이 깜짝 놀라,  
  
  "네 어찌 오냐?"  
  
  "도련님이 와 계시다."  
  
  춘향이가 이 말을 듣고 가슴이 울렁울렁 속이 답답하여 부끄럼을 이기지 못하여 문을 열고 나오더니 건넌방에 건너가서 저의 모친을 깨우는데,  
  
  "애고 어머니, 무슨 잠을 이다지 깊이 주무시오?"  
  
  춘향의 모 잠을 깨어,  
  
  "아가 무엇을 달라고 부르느냐?"  
  
  "뉘가 무엇을 달랬소?"  
  
  "그러면 어째서 불렀느냐?"  
  
  엉겁결에 하는 말이,  
  
  "도련님이 방자 뫼시고 오셨다오."  
  
  춘향의 모친이 문을 열고 방자 불러 묻는 말이  
  
  "뉘 왔냐?"  
  
  방자 대답하되,  
  
  "사또 자제 도련님이 와 계시오."  
  
  춘향모 그 말을 듣고,  
  
  "향단아!"  
  
  "네."  
  
  "뒤 초당에 좌석과 등촉을 신칙감시하여 포진하라."  
  
  당부하고 춘향모가 나오는데 세상 사람들이 다 춘향모를 칭송하더니 과연 그 이유가 있었다. 예로부터 사람이 외탁(外託)을 많이 하는 고로 춘향 같은 딸을 낳았구나. 춘향모 나오는데 거동을 살펴보니, 반백이 넘었는데 소탈한 모양이며 다정한 거동이 표표정정하고 살결이 윤택하여 복이 많게 보이더라. 점잖은 걸음으로 걸어 나오는데 가만가만 방자가 뒤를 따라 온다.  
   

  
  이때 도련님이 천천히 거닐며 뒤 돌아보고 흘겨보기도 하며 무료히 서 있을 때 방자가 여짜오되,  
  
  "저기 오는 게 춘향모로소이다."  
  
  춘향모가 나오더니 공수(拱手)하고 우뚝 서며,  
  
  "그 사이 도련님 문안이 어떠시오?"  
  
  도련님 반만 웃고는,  
  
  "춘향의 모친이라지...... 평안한가?"  
  
  "예 겨우 지냅니다. 오실 줄 진정 몰라 영접이 불민하옵니다."  
  
  "그럴 리가 있나?"  
  
  춘향모 앞을 서서 인도하여 대문 중문 다 지나고 후원(後苑)을 돌아가니 해묵은 별초당(別草堂)에 등촉을 밝혔는데 버들가지 늘어져 불빛을 가린 모양이 구슬 발(발)이 갈고랑이에 걸린 듯하고 오른쪽의 벽오동은 맑은 이슬이 뚝뚝 떨어져 학의 꿈을 눌래 주는 듯하고, 좌편에 섰는 반송(盤松)은 청풍이 건듯 불면 늙은 용이 꿈틀거리는 듯하고, 창앞에 심은 파초, 일란초(日暖初) 봉미장(鳳尾長=파초의 속잎이 봉의 꼬리와 같이 길다는 말)은 속잎이 빼어나고 수심여주(水心如珠) 어린 연꽃 물 밖에 겨우 떠서 옥로는 비껴 있고, 대접 같은 금붕어는 고기 변해 용되려 하고 때때로 물결쳐서 출렁출렁 굼실놀 때마다 조롱하고, 새로 나는 연잎은 받을 듯이 벌어지고 금연 상봉석가산( 然上峰石假山=뜰에 돌로 쌓아 놓은 산)은 층층이 쌓였는데 계해의 학두루미 사람을 보고 놀래어 두 쪽지를 떡 벌리고 긴 다리로 징검징검 낄룩뚜르륵 소리하며 계화밑에 삽살개 짖는구나. 그중에 반가운 것은 못 가운데 쌍오리는 손님 오신노라 두둥실 떠서 기다리는 모양이요, 처마에 다다르니 그제야 저의 모친의 영을 받을어 사창을 반쯤 열고 나오는데 그 모양을 살펴보니 뚜렷한 일륜명월(一輪明月)이 구름 밖에 솟았는 듯 황홀한 그 모양은 측량키 어렵다. 부끄러이 당에 내려 천연스레 서 있는 거동은 사람의 긴장을 다 녹인다. 도련님 반만 웃고 춘향더러 묻는 말이,  
  
  "곤(困)치 아니하여 밥이나 잘 먹느냐?"  
  
  춘향이 부끄러워 대답치 못하고 묵묵히 서 있거늘 춘향모가 먼저 당에 올라 도련님을 자리로 모신 후에 차를 들여 권하고 담배 붙여 올리니, 도련님 받아 물고 앉았을 때 도련님 춘향의 집 오실 때는 춘향에게 뜻이 있어 와 계시는 것이지 춘향의 세간 기물 구경 온 게 아니로되, 도련님의 첫 외입인지라 밖에서는 무슨 말이 있을 듯하더니, 들어가 앉고 보니 별로이 할말이 없고 공연히 기침 기운이 나서 오한증(惡寒症)이 들면서 아무리 생각하여 보아도 할 말이 없었다. 방 한가운데를 둘러보며 벽 위를 살펴보니 상당한 기물들이 놓여 있다. 용장(龍欌)과 봉장(鳳欌), 가께 수리 여기저기 벌려 있고 그림을 그려 붙여 있으되, 서방 없는 춘향이요, 학문하는 계집아이가 세간과 그림이 왜 있는까 마는 춘향모가 유명한 명기라 그 딸을 주려고 장만한 것이었다. 조선의 유명한 명필 글씨가 붙여 있고 그 사이에 붙은 명화 다 후리쳐 던져 두고 월선도(月仙圖)란 그림이 붙었느니 월선도의 화제(畵題)가 다음과 같았다. 임금님이 높이 앉아 군신의 조회를 받는 그림(上帝高??朝節), 청년거사 이태백이 황학전(黃鶴展)에 꿇어앉아 황정경(黃庭經) 읽는 그림, 백옥루(白玉樓) 지는 후에 자기 불러 올려 상량문(上樑文) 짓는 그림, 칠월 칠석 오작교에서 견우 직녀 만나는 그림, 광한전 달밝은 밤에 약을 찧던 항아(姮娥)의 그림,  
층층이 붙였으나 광채가 찬란하여 정신이 산만하였다. 또 한 곳을 바라보니, 부춘산 엄자릉(富春山嚴子陵)은 간의대부(諫議大夫) 마다하고 백구를 벗을 삼고 원학(遠鶴)으로 이웃삼아 양구(洋 )를 떨쳐 입고 추동가(秋桐江) 칠리탄(七里灘)에 낚시줄 던진 경치를 역력히 그려 놓았다. 방가위지(方可謂之) 선경이라. 남자의 좋은 짝이 놀 데가 바로 여기라. 춘향이 일편단심으로 일부종사 하려고 글 한 수를 지어 책상 위에 붙였으되,  
  
  운을 띈 것은 봄바람의 대나무요  
  향불을 피운 것은 밤에 책 읽을러라.  
  
  ??春風竹  ?香夜讀書  
  
  "기특하다 이글 뜻은 목란(木蘭)의 절개로다."  
  
  이렇듯 칭찬할 때 춘향모 말하기를,  
  
  "귀중하신 도련님이 변변찮은 집에 와 주시니 황공하고 감격하옵니다."  

  도련님 그 말 한 마디에 말구멍이 열리었제.  
  
  "그럴 리가 왜 있는가. 우연히 광한루에서 춘향을 잠깐 보고 연연히 보내기로 탐화봉접(探花蜂蝶=여색을 좋아함) 취한 마음, 오늘 밤에 오는 뜻은 춘향의 모 보러 왔거니와 자네 딸 춘향이와 백년언약을 맺고저 하니 자네의 마음 어떠한가?"  
  
  춘향의 모가 대답하되,  
  
  "말씀은 황송하오나 들어보오. 자핫골 성참판 영감이 보후(補後)=내직에 들어가기 전에 잠시 外官에 補任하는 것)로 남원에 좌정하실 때 소리개를 매로 보고 수청을 들라 하옵기로 관장의 영을 어길 수가 없어 모신 지 삼삭만에 올라가신 후 뜻밖으로 잉태하여 낳은 것이 저것이라. 그런 연유로 성참판께 아뢰니 <젖줄 떨어지면 데력가련다> 하시더니 그 양반이 불행하여 세상을 버리시니 보내지 못하옵고 저것을 길러 낼 때, 어려서 잔병조차 그리 많고 일곱 살에 소학 읽혀 소신제가(修身齊家) 화순심(和順心)을 낱낱이 가르치니, 씨가 있는 자식이라 만사를 달통하고 삼강행실, 뉘라서 내 딸이라 하리요. 가세가 부족하니 재상가(宰相家)에는 부당하고 사(士), 서인(庶人) 상하에 다 미치지 못하니 혼인이 늦어져서 주야로 걱정이나 도련님 말씀은 잠시 춘향과 백년기약한다는 말씀이오나 그런 말씀 말으시고 노시다가 가시기나 하시오."  
  
  이 말이 참말 아니라 이도령님 춘향을 얻는다 하니 앞일 몰라 뒤를 눌려 하는 말이었다.  
  
  이도령 기가 막혀,  
  
  "호사에 다마로세. 춘향도 미혼 전이나 나도 미장가 전이라 피차 언약이 이렇고 육례는 못할망정 양반의 자식이 일구이언을 할 까닭이 있겠나?"  
  
  춘향의 모 이 말 듣고,  
  
  "또 내 말 들으시오. 고서에 하였으되 신하를 아는 것은 임금만한 이 없고, 아들을 아는 것은 아비만한 이 없고 딸을 아는 것을 어미만한 이 없다 않았는가? 내 딸 마음 내가 알지요. 어려서부터 절곡한 뜻이 있어 행여 신세를 그르칠까 의심이오. 일부종사 하려 하고 일마다 하는 행실 철석같이 굳은 뜻이 청송녹죽 전나무 사시절을 다투는 듯 상전벽해 될지라도 내 딸 마음 변할 손가. 금은 보화가 산 같이 쌓여 있을지라도 받지 아니할 것이오. 백옥 같은 내 딸 마음 청풍인들 미치이요. 다만 옛날의 큰 뜻을 본받고자 할 뿐인데 도련님은 욕심부려 인연을 맺었다가 미장가 전 도련님이 부모 몰래 깊은 사람 금석같이  
맺었다가 소문나 버리시면 옥결 같은 내 딸 신세 문채 좋은 대모(玳瑁=열대 지방에 사는 거북) 진주, 고운 구슬, 군역노리 깨어진 듯, 청강에 노든 원앙새가 짝 하나를 잃었다 한들 어이 내 딸 같은손가. 도련님의 속 마음이 말과 같을진댄 깊이 알아 행아소서."  
  
  
  도련님 더욱 답답하여,  
  
  "그건 두 번 다시 염려 마소. 내 마음 혜아리니 특별간절 굳은 마음 흉중에 가득하니 분의(分義)는 다를망정 저와 나와 평생 기약을 맺을 때에 전안납폐(奠雁納幣=결혼식 때의 예식의 하나) 아니한들 창파같이 깊은 마음 춘향 사정 모를 손가."  
  
  이렇듯 설화(設話)하니, 청실홍실 육례(六禮)를 갖춰 만난다 해도 이 위에 더 뾰족할 것인가.  
  
  "내 저를 첫장가 모양 여길 터이니 시하(侍下)라고 염려 말고 미장가 전이라고 염려마오. 대장부 먹은 마음으로 박대하는 행실을 할 것인가? 허락만 하여 주오."  
  
  춘향의 모 이 말을 듣고 이윽히 앉았더니 몽조(夢兆)가 있는지라 연분인 줄 집작하고 흔연히 허락하여,  
  
  "봉(鳳)이 나매 황(凰)이 나고 장군 나매 용마 나고 남원의 춘향 나매 이화춘풍 꽃다웁다. 향단아, 주반(酒盤) 등대 하였느냐?"  
  
  "예."  
  
  대답하고 주효를 차릴 때에 안주등을 보자하니 고음새도 정결하고 대양판(大板) 갈찜, 소양판(小 판) 제육찜, 풀풀 뛰는 숭어찜, 포도동 날으는 매초리 탕에, 동래(東萊), 울산(蔚山) 대전복, 대모장도(玳帽粧刀=대모갑으로 칼집을 만든 장도칼) 잘다는 칼로 맹상군(孟嘗君)의 눈썹과 같이 어슥비슥 오려놓고 염통, 산적, 양볶음과 춘치자명(春稚自鳴) 생치(生稚) 다리 적벽(赤壁) 대접 분원기(分院器)에 냉면조차 비벼 놓고, 생밤, 찐밤, 잣송이며, 호도, 대추, 석류, 유자, 준시, 앵두, 탕기(湯器) 같은 청술레(푸른배)를 불품 있게 고였는데 술병 치레를 볼 것 같으면 티끌 없는 백옥병과 푸르른 산호병과 엽락금정(葉落金井=중국에 있는 섬) 오동병과 목이 긴 황새병, 자래병, 당화병, 쇄금병, 소상동정 죽절병, 그 가운데 품질이 좋은 은으로 만든 주전자, 적동자, 쇄금자 등을 차례로 놓았는데 빠짐 없이도 구비하여 놓았구나. 술 이름을 말할진대 이적선(李謫仙) 포도주와, 안기생(安期生) 자하주(紫霞酒=이슬을 받아 만든 술)와, 산림처사(山林處士) 송엽주(松葉酒)와, 과하주(過夏酒), 방문주(方文酒), 천일주, 백일주, 금로주(金露酒) 팔팔 뛰는 화주(火酒), 약주, 그 가운데 향기로운 연엽주(蓮葉酒) 골라 내어 알모양으로 동그란 주전자에 가득부어 청동화로 백탄 불에 남비 냉수 끓는 가운데 동그란 주전자에 부어 차지도 덥지도 않게 데워내어 금잔, 옥잔, 앵무새 주둥이 같은 잔을 그 가운데 띄웠으니, 옥경, 연화 피는 곳에 태을선녀(太乙仙女)가 배를 띄우둣 대광보국(大匡輔國=벼슬이름) 연꽃잎 영의정 파초선을 띄우듯 두둥실 띄워 놓고 권주가 한 곡조에 한잔 한잔 또 한잔이라. 이도령 하는말이  
  
  "오늘밤에 하는 절차 보니 관청이 아닌 바에 어이 그렇게 구비한가?"  
   
  
  
  춘향모 말하기를,  
  
  "내 딸 춘향 곱게 길러 요조숙녀는 군자의 짝으로 가려서 금실을 벗하여 평생을 동락하올 때에 사랑에 노는 손님 영웅호걸, 문장들과 죽마고우 벗님네들과 주야로 즐기실 때, 내당의 하인 불러 밥상 술상 재촉할 때, 보고 배우지 못하고는 어찌 곧 등대하리요? 안사람이 민첩지 못하면 남편의 낯을 깍는 것이니 내 생전에 힘써 가르쳐 아무 쪼록 빛받아 행하려고 돈이 생기면 사모으고 손으로 만들어서 눈에 익고 손에도 익히려고 잠시라도 놀지 않고 시킨 보람이오니 부족타 말으시고 구미대로 잡수시오."  
  
  하며 앵무배 술잔에 가득히 술을 부어 도련님께 드리오니 이도령 잔 받아 손에 들고 탄식하며 하는 말이,  
  
  "내 마음대로 한다면 육례(六禮)를 행할 것이나 그렇게는 못하고 개구멍 서방으로 들고 보니 이 아니 원통하냐.  
  이애 춘향아, 그러나 우리 둘이 대례 술로 알고 먹자."  
  
  한 잔 술 부어 들고,  
  
  "내 말 들어라. 첫째 잔은 인사주요. 둘째 잔은 합환주(合歡酒)니, 이 술이 다른 술이 아니라 근원 근본으로 삼으리라. 순임금 때의 아황(娥皇)과 여영(如英)이 귀히 만난 연분이 귀중하다 하였으되 월로(月老)의 우리 연분, 삼생(三生) 가약을 맺은 연분, 천만년이라도 변치 않을 연분대대로 삼태(三台) 육경(六卿=三議政 六判書를 말함) 자손이 많이 번성하여 자손 증손 고손이며 무릎 위에 앉혀 놓고 죄암죄암 달강달강 백 살까지 살다가 한 날 한 시 마주 누워 선후없이 죽게 되면 천하에 제일 가는 연분이 아닌가."  
  
  술잔 들어 먹는 후에  
  
  "향단아, 술 부어 너의 마나님께 드려라."  
  
  "장모, 경사술이니 한 잔 먹으소."  
  
  춘향의 모 술잔 들고 슬프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여 하는 말이,  
  
  "오늘이 우리 딸이 백년의 고락을 맺는 날이라, 무슨 슬픔 있을까마는 저것을 길러낼 때 애비없이 길러 이 때를 당하오니 영감 생각이 간절하여 비창하여라."  
  
  도련님 하는 말이,  
  
  "기왕지사 생각 말고 술이나 먹소."  
  
  춘향모 수 삼배 먹은 후에 도련님 통인 불러 상 물려 주면서,  
  
  "너도 먹고 방자도 먹여라."  
  
  통인과 방자가 상을 물려 먹은 후에 대중 중문 다 닫히고 춘향의 모는 향단을 불러 자리를 보게 할 때에 원앙금침 잣베개와 샛별 같은 요강, 대야까지 갖춰 자리 보전을 정히 하고  
  
  "도련님 평안히 쉬시옵소서."  
  
  "향단아, 나오너라 나하고 함께 가자."  
  
  둘이 다 건너 갔구나.  

  춘향과 도련님과 마주 앉아 놓았으니 그 일이 어찌 되겠느냐. 사양(斜陽)을 받으면서 삼각산 제일봉에 봉학이 앉아 춤추는 듯 두 활개를 살포시 들고 춘향의 섬섬옥수를 반듯이 겹쳐 잡고 의복을 교묘하게 벗기는데 두 손길 썩 놓더니 춘향의 가는 허리를 담쑥 안고,  
  
  "치마를 벗어라!"  
  
  춘향이가 처음 일일 뿐 아니라 부끄러워 고개를 숙여 몸을 틀매 이리곰실 저리곰실 녹수(錄水)의 홍련화(紅蓮花)가 잔바람을 만나 흔들리는 듯, 도련님이 치마 벗겨 제쳐 놓고 바지와 속곳을 벗길 때에 무한이 힐난하다. 이리 굼실 저리 굼실 동해의 청룡이 굽이를 치는 듯하더라.  
  
  "아이고 놓아요. 좀 놓아요."  
  
  "엣다 안될 말이로다."  
  
  힐난하는 중에 옷끈 끌러 발가락에 딱 걸고서 지그시 누르며 기지개를 켜니 발길 아래 떨어진다. 옷이 활짝 벗겨지니 형산(荊山

중국에 있는 산이름, 玉의 산지)의 백옥덕이가 춘향에 비길쏘냐. 옷이 활짝 벗겨지니 도련님 거동을 보려하고 슬금히 놓으면서,  
  
  "아차차 손 빠졌다."  
  
  춘향이가 금침 속으로 달려든다. 도련님이 왈칵 쫓아 드러누워 저고리를 벗겨 내어 도련님 옷과 모두 한데다 둘둘 뭉쳐 한 편 구석에 던져 두고 둘이 안고 마주 누웠으니 그대로 잘 리가 있는가. 애를 쓸 때에 삼승(三升=굵은 배) 이불이 춤을 추고 샛별 요강은 장단을 맞추어 청그렁 쟁쟁 문고리는 달랑달랑, 등잔불은 가물가물, 맛이 있게 잘 자고 났구나. 그 가운데의 진진한 일이야 오죽하랴.  
  
  하루 이틀 지내가니 어린 것들이라 신맛이 간간 새로워 부끄러움은 차차 멀어지고 이제는 희롱도 하고 우스운 말도 있어 자연히 사랑가가 되었구나. 사랑하고 노는데 꼭 이 모양으로 노던 것이더라.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동정칠백(洞庭七百) 월하초에  
무산(巫山=중국에 있는 산이름) 같이 높은 사랑  
목단(目斷) 무변수(無邊水)에  
하늘 같고 바다 같은 깊은 사랑  
오산전(五山顚) 달 밝은데  
추산천봉(秋山千峰) 반달 사랑  
증경학무(曾經學舞)하올 적에  
하문취소(何問吹蕭)하던 사랑  
유유낙일(慾慾落日) 월렴간(月簾間)에  
도리화개(挑李花開) 비친 사랑  
섬섬초월 분백(紛白)한데 함소함태(含笑含態) 숱한 사랑  
월하의 삼생(三生)연분 너와 나의 만난 사랑  
허물 없는 부부 사랑  
화우동산(花雨東山) 목단화 같이 펑퍼지고 고운 사랑  
연평 바다 그물같이 얽히고 맺힌 사랑  
청루미녀(靑樓美女) 금침같이 혼솔마다 감친 사랑  
시냇가의 수양같이 펑퍼지고 늘어진 사랑  
남창(南倉) 북창(北倉) 노적(露積)같이 다물다물 쌓인 사랑  
은장(銀藏) 옥장(玉藏) 장식같이 모모이 잠긴 사랑  
영산홍록(映山紅綠) 봄바람에 넘노드니  
황봉(黃峰) 백접(白蝶) 꽃을 물고 질긴 사랑  
녹수청강 원앙조격으로 마주 둥실 떠 노는 사랑  
년년칠월 칠석야에 견우직녀 만난 사랑  
육관대사 성진(六觀大師性眞=九雲夢에 나오는 중과 주인공 이름)이가  
팔선녀와 노는 사랑  
역발산(力拔山) 초패왕(楚覇王)이  
우미인(虞美人)을 만난 사랑  
당나라 당명왕(唐明王)이  
양귀비(楊貴妃)를 만난 사랑  
명사십리(明沙十里=원산 부근 모래 사장) 해당화같이  
연연(娟娟)히 고운 사랑  
네가 모두 사랑이로구나.  
어화 둥둥 내 사랑아  
어화 내 간간 내 사랑이로구나."  
  
"여봐라 춘향아!"  
  
"저리 가거라 가는 태를 보자  
이만큼 오너라 오는 태를 보자  
빵긋 웃고 아장아장 걸어라 걷는 태도 보자  
너와 나와 만난 사랑  
연분을 팔자한들 팔 곳이 어디 있어  
생전 사랑 이러하고  
어찌 사후(死後) 기약이 없을쏘냐  
너는 죽어 될 것 있다  
너는 죽어 글자 되되  
따 지자(地字), 그늘 음자(陰字), 아내 처자(妻字), 계집 여자(女字) 변(邊)이 되고  
나는 죽어 글자 되되  
하늘 천자(天字), 하는 건자(乾), 자아비 부자(夫字), 사내 남자(男字) 아들 자자(子字) 몸이 되어 여(女) 변(邊)에다 붙이면 좋은 호자(好字)로 만나 보자  
또 너 죽어 될 것이 있다  
너는 죽이 물이 되되  
은하수, 폭포수, 만경창해수(萬頃滄海水)  
청계수(淸溪水), 옥계수(玉溪水),  
일대장강(一帶長江) 던져 두고  
칠년 대한(大旱) 가물 때 또 일상진진  
젓어 있는 음양수란 물이 되고  
나는 죽어 새가 되어  
두견새도 되지 말고  
요지(搖池) 일월 청조, 청학, 백학이며  
대붕조(大鵬鳥=엄청나게 커서 九萬里를 단번에 난다는 새) 그런 새가 될랴 말고  
쌍거쌍래 떠날 줄 모르는 원앙조란 새가 되어  
녹수의 원앙격으로  
어화 둥둥 떠놀거든  
나인 줄을 알려무나  
사랑 사랑 내 간간 내 사랑이야."  
   
근읍(近邑) 수령이 모여든다. 운봉 영장(營將), 구례, 곡성, 순창, 옥과, 진안, 장수 원님이 차례로 모여든다. 좌편에 행수 군관(行首軍官), 우편에 청령 사령(聽令使令), 한가운데 본관(本官)은 주인이 되어 하인 불러 분부하되,  
  
"관청색(官廳色) 불러 다담(茶啖)을 올리라. 육고자(肉庫子) 불러 큰 소를 잡고, 예방(禮房) 불러 고인(鼓人)을 대령하고, 승발(承發) 불러 차일(遮日)을 대령하라. 사령 불러 잡인(雜人)을 금하라."  
  
이렇듯 요란할 제, 기치(旗幟) 군물(軍物)이며 육각 풍류(六角風流) 반공에 떠 있고, 녹의 홍상(綠衣紅裳) 기생들은 백수 나삼(白手羅杉) 높이 들어 춤을 추고, 지야자 두덩실 하는 소리 어사또 마음이 심란하구나.  
  
"여봐라, 사령들아. 네의 원전(前)에 여쭈어라. 먼 데 있는 걸인이 좋은 잔치에 당하였으니 주효(酒肴) 좀 얻어 먹자고 여쭈어라."  
  
저 사령 거동 보소.  
  
"어느 양반이관대, 우리 안전(案前)님 걸인 혼금(혼禁)하니 그런 말은 내도 마오."  
  
등 밀쳐 내니 어찌 아니 명간(名官)인가. 운봉이 그 거동을 보고 본관에게 청하는 말이  
  
"저 걸인의 의관은 남루하나 양반의 후예인 듯하니, 말석에 앉히고 술 잔이나 먹여 보냄이 어떠하뇨?"  
  
본관 하는 말이  
  
"운봉 소견대로 하오마는……."  
  
하니 '마는' 소리 훗입맛이 사납겠다. 어사 속으로, '오냐, 도적질은 내가 하마. 오라는 네가 져라.'  
  
운봉이 분부하여  
  
"저 양반 듭시래라."  
  
어사또 들어가 단좌(端坐)하여 좌우를 살펴보니, 당상(當上)의 모든 수령 다담을 앞에 놓고 진양조 양양(洋洋)할 제 어사또 상을 보니 어찌 아니 통분하랴. 모 떨어진 개상판에 닥채저붐, 콩나물, 깍두기, 막걸리 한 사발 놓았구나. 상을 발길로 탁 차 던지며 운봉의 갈비를 직신,  
  
"갈비 한 대 먹고지고."  
  
"다라도 잡수시오."  
  
하고 운봉이 하는 말이  
  
"이러한 잔치에 풍류로만 놀아서는 맛이 적사오니 차운(次韻) 한 수씩 하여 보면 어떠하오?"  
  
"그 말이 옳다."  
  
하니 운봉이 운(韻)을 낼 제, 높을 고(高)자, 기름 고(膏)자 두 자를 내어 놓고 차례로 운을 달 제 어사또 하는 말이  
  
"걸인도 어려서 추구권(抽句卷)이나 읽었더니, 좋은 잔치 당하여서 주효를 포식하고 그저 가기 무렴(無廉)하니 차운 한 수 하사이다."  
  
운봉이 반겨 듣고 필연(筆硯)을 내어 주니 좌중(座中)이 다 못하여 글 두 귀〔句〕를 지었으되, 민정(民情)을 생각하고 본관의 정체(政體)를 생각하여 지었것다.  
  
"금준미주(金樽美酒)는 천인혈(千人血)이요, 옥반가효(玉盤佳肴)는 만성고(萬姓膏)라. 촉루낙시(燭淚落時) 민루낙(民淚落)이요, 가성고처(歌聲高處) 원성고(怨聲高)라.”  
  
이 글 뜻은, "금동이의 아름다운 술은 일만 백성의 피요, 옥소반의 아름다운 안주는 일만 백성의 기름이라. 촛불 눈물 떨어질 때 백성 눈물 떨어지고, 노랫소리 높은곳에 원망 소리 높았더라."  
  
이렇듯이 지었으되, 본관은 몰라보고 운봉이 이 글을 보며 내념(內念)에  
  
'아뿔싸, 일이 났다.'  
  
이 때, 어사또 하직하고 간 연후에 공형(公兄) 불러 분부하되,  
  
"야야, 일이 났다."  
  
공방(工房) 불러 포진(鋪陳) 단속, 병방(兵房) 불러 역마(驛馬) 단속, 관청색 불러 다담 단속,옥 형리(刑吏) 불러 죄인 단속, 집사(執事) 불러 형구(刑具) 단속, 형방(刑房)불러 문부(文簿) 단속, 사령 불러 합번(合番) 단속, 한참 이리 요란할 제 물색없는 저본관이  
  
"여보, 운봉은 어디를 다니시오?"  
  
"소피(所避)하고 들어오오."  
  
본관이 분부하되,  
  
"춘향을 급히 올리라."  
  
고 주광(酒狂)이 난다.  
  
이 때에 어사또 군호(軍號)할 제, 서리(胥吏) 보고 눈을 주니 서리, 중방(中房) 거동 보소. 역졸(驛卒) 불러 단속할 제 이리 가며 수군, 저리 가며 수군수군, 서리 역졸 거동 보소. 외올 망건(網巾), 공단(貢緞) 쌔기 새 평립(平笠) 눌러 쓰고 석 자 감발 새 짚신에 한삼(汗衫), 고의(袴衣) 산뜻 입고 육모방치 녹피(鹿皮) 끈을 손목에 걸어 쥐고 예서 번뜻 제서 번뜻, 남원읍이 우군우군, 청파 역졸(靑坡驛卒) 거동 보소. 달 같은 마패(馬牌)를 햇빛같이 번듯 들어  
  
"암행 어사 출도(出道)야!"  
  
외는 소리, 강산이 무너지고 천지가 뒤눕는 듯. 초목 금순(草木禽獸)들 아니 떨랴.  
  
남문에서  
  
"출도야!"  
  
북문에서  
  
"출도야!"  
  
동·서문 출도 소리 청천에 진동하고,  
  
"공형 들라!"  
  
외는 소리, 육방(六房)이 넋을 잃어,  
  
"공형이오."  
  
등채로 휘닥딱  
  
"애고 중다."  
  
"공방, 공방!"  
  
공방이 포진 들고 들어오며,  
  
"안 하려던 공방을 하라더니 저 불 속에 어찌 들랴."  
  
등채로 후다딱  
  
"애고, 박 터졌네."  
  
좌수, 별감 넋을 잃고, 이방, 호방 실혼(失魂)하고, 삼색 나졸(三色羅卒) 분주하네.  
  
모든 수령 도망할 제 거동 보소. 인궤(印櫃) 잃고 과줄 들고, 병부(兵符) 잃고 송편 들고, 탕건(宕巾) 잃고 용수 쓰고, 갓 잃고 소반(小盤) 쓰고, 칼집 쥐고 오줌 누기. 부서지니 거문고요, 깨지느니 북, 장고라. 본관이 똥을 싸고 멍석 구멍 새양쥐 눈 뜨듯하고 내아(內衙)로 들어가서  
  
"어 추워라, 문 들어온다, 바람 닫아라. 물 마른다, 목 들여라."  
  
관청색은 상을 잃고 문짝 이고 내달으니, 서리, 역졸 달려들어 후닥딱  
  
"애고, 나 죽네!"  
  
이 때 수의 사또 분부하되,  
  
"이 골은 대감이 좌정하시던 골이라, 훤화(喧譁)를 금하고 객사(客舍)로 사처(徙處)하라."  
  
좌정(座定)후에  
  
"본관은 봉고 파직(封庫罷職)하라."  
  
분부하니,  
  
"본관은 봉고 파직이오!"  
  
사대문에 방 붙이고 옥 형리 불러 분부하되,  
  
"네 골 옥수(獄囚)를 다 올리라."  
  
호령하니 죄인을 올리거늘, 다 각각 문죄(問罪) 후에 무죄자 방송(放送)할세,  
  
"저 계집은 무엇인다?"  
  
형리 여짜오되,  
  
"기생 월매 딸이온데, 관정(官庭)에 포악(暴惡)한 죄로 옥중에 있삽내다."  
  
"무슨 죄다?"  
  
형리 아뢰되,  
  
"본관 사또 수청(守廳)으로 불렀더니 수절(守節)이 정절(貞節)이라 수청 아니 들려하고 관전(官前)에 포악한 춘향이로소이다."  
  
어사또 분부하되,  
  
"너만 년이 수절한다고 관정 포악하였으니 살기를 바랄쏘냐. 죽어 마땅하되 내 수청도 거역할까?"  
  
춘향이 기가 막혀  
  
"내려오는 관장(官長)마다 개개이 명관이로구나. 수의(繡衣) 사또 듣조시오. 층암 절벽(層巖絶壁)높은 바위 바람 분들 무너지며, 청송 녹죽(靑松綠竹) 푸른 남기 눈이 온들 변하리까? 그런 분부 마옵시고 어서 바삐 죽여 주오."  
  
하며,  
  
"향단아, 서방님 어디 계신가 보아라. 어젯밤에 옥문간에 와 계실 제 천만 당부하였더니 어디를 가셨는지, 나 죽는 줄 모르는가?"  
  
어사또 분부하되,  
  
"얼굴 들어 나를 보라."  
  
하시니, 춘향이 고개 들어 대상(臺上)을 살펴보니 걸객(乞客)으로 왔던 낭군, 어사또로 뚜렸이 앉았구나. 반 웃음 반 울음에  
  
"얼싸구나 좋을씨고. 어사 낭군 좋을씨고. 남원 읍내 추절(秋節) 들어 떨어지게 되었더니, 객사에 봄이 들어 이화 춘풍(李花春風) 날 살린다. 꿈이냐 생시냐, 꿈을 깰까 염려로다."  
  
한참 이리 즐길 적에 춘향 모 들어와서 가없이 즐겨하는 말을 어찌 다 설화(說話)하랴. 춘향의 높은 절개 광채 있게 되었으니 어찌 아니 좋을쏜가?  
  
어사또 남원 공사(公事) 닦은 후에 춘향 모녀와 향단이를 서울로 치행(治行)할 제, 위의(威儀) 찬란하니 세상 사람들이 누가 아니 칭찬하랴. 이 때, 춘향이 남원을 하직할새, 영귀(榮貴)하게 되었건만 고향을 이별하니 일희일비(一喜一悲)가 아니 되랴.  
  
"놀고 자던 부용당(芙蓉堂)아, 너 부디 잘 있거라. 광한루(廣寒樓), 오작교(烏鵲橋)며 영주각(瀛州閣)도 잘 있거라. 춘초(春草)는 연년록(年年綠)
하되 왕손(王孫)은 귀불귀(歸不歸)라, 날로 두고 이름이라. 다 각기 이별할 제 만세 무량(萬歲無量)하옵소서, 다시 보긴 망연(茫然)이라."  
  
이 때, 어사또는 좌우도(左右道) 순읍(巡邑)하여 민정을 살핀 후에 서울로 올라가 어전(御前)에 숙배(肅拜)하니, 삼당상(三堂上) 입시(入侍)하사 문부(文簿)를 사정(査定) 후에 상이 대찬(大讚)하시고 즉시 이조 참의(吏曹參議) 대사성(大司成)을 봉하시고, 춘향으로 정렬부인(貞烈夫人)을 봉하시니, 사은(謝恩) 숙배하고 물러 나와 부모전에 뵈온대, 성은(聖恩)을 축수(祝壽)하시더라.  
  
이 때, 이판(吏判), 호판(戶判), 좌우 영상(左右領相) 다 지내고, 퇴사(退仕) 후 정렬부인으로 더불어 백 년 동락할새, 정렬 부인에게 삼남 이녀를 두었으니, 개개이 총명하여 그 부친을 압두(壓頭)하고 계계승승(繼繼承承)하여 직거 일품(職居一品)으로 만세유전(萬世流傳)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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