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와 역사/고구려

9. 고국천왕(故國川王)

오늘의 쉼터 2008. 10. 27. 23:40

 

 

 9. 고국천왕(故國川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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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국천왕(故國川王)

■ ?∼197
■ 고구려 제9대왕
■ 재위 179∼197(또는 199)



※ 본문설명

이름은 남무(男武). 국양왕(國襄王) 또는 국양왕(國壤王)이라고도 한다. 신대왕(新大王)의 둘째아들이다. 176년(신대왕 12) 태자로 책봉되었으며, 신대왕이 죽은 뒤 국인(國人)의 지지를 받아 즉위하였다.

184년 후한 요동태수의 침입을 격퇴시키는 등, 고구려사회의 성장을 저지하는 외부세력의 압력에 능동적으로 대처해 나갔다. 다른 한편, 180년 제나부(提那部, 椽那部) 우소(于素)의 딸을 왕비로 맞아들여 왕비족과의 결탁을 통한 왕권지지기반을 확대함으로써, 초부족적 지배질서의 수립과 왕권강화에 힘썼다.

190∼191년에 걸친 좌가려(左可慮)와 어비류(於卑留)의 난을 진압하였고, 194년 진대법(賑貸法)을 실시하여 궁핍한 농민들에 대한 구휼책을 마련함으로써 왕권을 강화해나갔다. 그러한 진대법의 실시는 왕권에 대항하는 세력들과 농민들과의 결탁을 저지함은 물론, 농민들을 적극적으로 포섭하려는 정책적인 배려였다. 그리고 그러한 정책들을 적극 추진해 나가기 위하여 지배세력 내의 많은 반발에도 불구하고, 191년 을파소(乙巴素)를 국상(國相)에 임명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고국천왕 때를 계기로 왕위계승 방법이 형제상속에서 부자상속으로의 전환을 가져왔으며, 또 부족명을 의미하는 부명(部名)이 단순한 방위명(方位名)으로 변화를 보이는 사실 등은 고국천왕 때에 있어 왕권 및 초부족적 지배질서의 강화를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런데 신대왕 백고(伯固)가 죽은 뒤 왕위를 계승한 것은 산상왕 이이모(伊夷模)라는 《삼국지》 고구려전 등의 중국측 기록에 입각하여, 고국천왕의 실재를 부인하려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고국천왕 당시는 중국이 황건적(黃巾賊)의 난과 군웅할거 등으로 말미암아 일대 혼란기였으므로, 주변지역에 대한 중국측 기록의 신빙성에도 문제가 있다고 하겠다. 왕의 장지는 고국천원(故國川原)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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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三國史記
高句麗王妃族考(李基白, 震檀學報 20,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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