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국가민속문화재

국가민속문화재 제115호 이형부인 동래정씨 의복

오늘의 쉼터 2008. 4. 29. 17:41



종     목 국가민속문화재 제115호
명     칭이형부인동래정씨의복(李泂夫人東萊鄭氏衣服)
분     류 유물 / 생활공예/ 복식공예/ 의복
수량/면적 일괄
지 정 일 1981.11.29
소 재 지 전북 전주시  완산구 효자동 892-1 전주역사박물관
시     대조선시대
소 유 자이춘재
관 리 자전주역사박물관

일반설명

조선 선조때 죽은 동래정씨의 의복이다. 동래정씨는 전주이씨 고림군의 손자인 증좌찬성 이형의 부인으로 정경부인이었다. 이 의복은 1941년 경기도 시흥시 금불암 옆의 동래정씨묘를 임실군 둔남면 대정리 종산에 옮길 때 관속의 옷함에서 발견된 것들이다.

의복은 백목면누비치마 1점, 명주누비치마 2점, 명주누비직령포 1점, 내친상 2점이다. 이 의복은 착용연대가 임진왜란 전인데, 직령포의 동정 너비가 4㎝밖에 안되어 그 시기의 포 중에서도 동정이 가장 좁다. 이것은 정씨부인이 한양에 살고 있었고 왕족이었기 때문에 여타지방의 반가에 비하여 변화의 유형이 다소 앞선 때문이 아닌가 추측된다. 특이한 것은 내친고가 있다는 것인데, 이것은 속치마의 일종으로 앞은 통으로 되고, 뒤의 엉덩이선 이하가 터져 있다. 광주 김덕령의 조카며느리 옷에서도 발견된다.

동래정씨부인이 선조 16년(1583)에 죽었으므로 이 옷들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의 의복임이 분명한데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에도 상한 곳이 거의 없어서 의복의 변천과정을 파악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전문설명


이 의복은 조선 선조 16년(1583)에 졸한 동래정씨(東萊鄭氏)의 것으로 울산 이휴정 소장의 의복과 광주 충장사 김덕령 질부유품과 상통하는 것으로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동래정씨는 전주이씨 고림군의 손인 증좌찬성(贈左贊成) 형(泂)의 배위(配位)로써 정경부인이었다.

이 의복은 1941년 이장시 경기도 시흥군 염불암에서 출토된 것으로 임진왜란 전의 자료이다. 의복은 백목면납의상(白木綿納衣裳) 1점, 명세납의상(明細納衣裳) 2 점, 명주납의직령포(明細納衣直領袍)1 점, 내친고 2점이다.

이 의복은 착용년대가 임란전인데 직령포의 동정넓이가 4cm 밖에 안되기 때문에 그 시기의 포중에서도 동정이 가장 좁다. (1/2정도) 이것은 정씨부인이 한양에 살고 있었고 왕족의 가문이기 때문에 다른 지방 반가의 의복에 비하여 변화의 유형이 다소 앞섰기 때문일 것이다. 이 의복은 몇 점되지 않지만 연대가 명확한 임란전의 옷으로 그중 직령포는 울산 이휴정포와 같으나 누비포이며 삼수가 달려 있다. 또한 광주의 장흥임씨 옷과 같이 내친고가 있다는 점(點)이 특이하다. 내친고는 속치마의 일종으로 앞이 통으로 되고 뒤의 엉덩이선 이하가 터져 있는 것으로 광주의 김덕령 질부옷에서도 발견되며 최근까지도 이런 속치마를 종종 볼 수 있었다고 하나 확인할 수는 없다. 2점 중에서 1점은 밑에서 12cm를 파서 바지의 기능을 하도록 되어 있는데, 이것은 의복(衣服)의 변천제도를 파악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그 치수는 치마길이 87cm, 허리둘레 55cm, 밑위길이 33cm, 무넓이 10.5cm, 단길이 20cm, 단넓이 8.5cm이다.




이형부인동래정씨의복

백목면납의상

명주납의상

명주납의 직령포

내친상

내친상

내친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