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사적

사적 제167호 해남윤씨 녹우당 일원

오늘의 쉼터 2008. 2. 18. 20:53


종     목 사적  제167호
명     칭해남윤씨 녹우당 일원 (海南尹氏 綠雨堂 一圓)
분     류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주거건축/ 가옥
수량/면적 14,268㎡
지 정 일 1968.12.19
소 재 지 전남 해남군  해남읍 연동리 82
시     대조선시대
소 유 자사유
관 리 자

해남윤씨

일반설명

고산 윤선도가 살았던 집으로 윤선도의 4대 조부인 효정(1476∼1543)이 연동에 터를 정하면서 지은 15세기 중엽의 건물이다. 집터 뒤로는 덕음산을 두고, 앞에는 벼루봉과 그 오른쪽에 필봉이 자리잡고 있는 명당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대문을 들어서면 바로 사랑마당인데, 앞면에 사랑채가 있고 서남쪽 담모퉁이에는 조그마한 연못이 있다. 사랑채는 효종이 윤선도에게 내려준 경기도 수원에 있던 집을 현종 9년(1668)에 이곳에 옮긴 것이다. 사랑채 뒤 동쪽 대문을 들어서면 안채가 ‘ㄷ’자형으로 자리잡고 있다. 사당은 안채 뒤 동쪽 담장 안에 한 채가 있고 담장 밖에 고산사당과 어초은사당 등이 있다.

입구에는 당시에 심은 은행나무가 녹우단을 상징하고 뒷산에는 500여 년 된 비자나무숲(천연기념물 제241호)이 우거져 있다. 이곳에는 윤두서자화상(국보 제240호), 『산중신곡집』(보물 제482호), 『어부사시사집』 등의 지정문화재와 3천여 건의 많은 유물이 보관되어 있다.

녹우단은 안채와 사랑채가 ‘ㅁ’자형으로 구성되고 행랑채가 갖추어져 조선시대 상류 주택의 형식을 잘 나타내고 있다.


전문설명


녹우당< 錄雨堂 >은 해남< 海南 > 윤씨< 尹氏 >의 종가< 宗家 >이다. 윤선도< 尹善道 >의 4대 조부< 祖父인 효정< 孝貞 >(호:어초은< 漁樵隱 >, 1476-1543)이 연동< 蓮洞 >에 살터를 정하면서 지은 15세기 중엽의 건물이다. 사랑채는 효종< 孝宗 >이 스승인 윤선도에게 하사했던 경기도 수원집을 현종< 顯宗 > 9년(1668)에 해상 운송하여 이곳에 이전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윤선도(호:고산< 孤山 >, 1587-1671)는 한성부< 漢城府 > 남부< 南部 > 명례방< 明禮坊 >(현 서울 명동)에서 살다가 중년에 연동으로 내려와 해남< 海南 > 금쇄동< 金鎖洞 >과 완도< 莞島 > 보길도< 甫吉島 >를 내왕하면서 불후의 시조문학< 時調文學 >을 남겼다. 녹우당의 건축은 풍수 지리에 따라 덕음산< 德陰山 >을 진산< 鎭山 >으로 안채와 사랑채가 ㅁ자형으로 구성되고 행랑채가 갖추어져 조선시대 상류< 上流 > 주택< 住宅 >의 형식을 잘 나타내고 있다. 경역에는 가묘< 家廟 > 어초은사당< 漁樵隱祠堂 > 고산사당< 孤山祠堂 > 등이 있으며 입구에는 당시에 심은 은행나무가 녹우당을 상징하고 뒷산에는 오백여 년 된 비자나무숲 (천연기념물 제241호)이 우거져 있다. 이 곳에는 윤두서자화상 < 尹斗緖自畵像 >(국보 제240호), 산중신곡집 < 산중신곡집 >(보물 제482호), 어부사시사집< 漁父四時詞集 > 등의 지정문화재와 3천여 건의 많은 유물이 보관되어 있다.




해남윤씨녹우단전경

해남윤씨녹우단(고택)

고택

고택

해남윤씨녹우단(고택)

해남윤씨녹우단

유물전시관

해남윤씨녹우단(어초은사당)

고산사당

고산시비

노거수

녹우당 돌담

녹우당 주춧돌

녹우당출구 빗장걸이

매표소

사랑채 띠창살문

사랑채 전경

사랑채 정원

사랑채 처마

안채

어초은 사당

어초은 사당벽

어초은사당 외삼문

어초은사당

연지1

연지2

연지3

연지4

위치도

전시장

추원당

충헌각

향나무

현판1

현판2

현판3

흑담과 노거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