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사적

사적 제17호 경주남고루

오늘의 쉼터 2008. 2. 8. 17:34


종     목 사적  제17호
명     칭경주남고루(慶州南古壘)
분     류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성/ 성곽시설
수량/면적 53,190㎡
지 정 일 1963.01.21
소 재 지 경북 경주시  황오동 21-1외 77필
시     대고려시대
소 유 자국유,사유
관 리 자경주시
일반설명

경주 대능원의 남쪽 입구에서부터 동쪽으로 황오동 고분군을 둘러싸면서 다시 북쪽으로 북천에 이르는 방어용 시설물인 토루(土壘)이다.

경주시의 개발로 대부분 파손되고, 지금은 일부에 흔적만 남아있다. 신라의 고분군 또는 반월성(半月城)과 연관성이 없는 점, <고려사>의 1012년 경주에 축성했다는 기록과 <동경잡기(東京雜記)>의 고려 현종 때 전라·충청·경상 3도의 군졸을 동원하여 북천의 석축 제방을 쌓았다는 기록, 그리고 현재의 위치·두께 등으로 미루어보아 고려 때 읍성의 수재를 막기 위해 쌓은 제방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1993년 부분적인 조사를 통해 성벽의 기초 석축과 인공적으로 물이 흐르도록 한 방어시설인 해자가 확인되어, 고려시대 읍성의 외성일 가능성도 가지고 있다.


전문설명

 

경주 시가지의 동남쪽을 멀리 휘감은 듯한 유구로서, 고려시대의 성곽이다. 원래는 미추왕릉(味鄒王陵)·천마총(天馬塚)·황남대총(皇南大塚) 등이 모여 있는 대릉원(大陵園)의 남쪽 입구 부근에서부터 동으로 가면서 황오동고분군(皇吾洞古墳群)을 둘러싸는 것과 같은 형세를 이루고, 다시 북쪽으로 꺾으면서 북천(北川)에 도달하고 있는 윤곽을 보였으나, 시가지의 발전으로 대부분 흔적 없이 파손되었고, 현재는 경주고등학교 서편을 지나는 토루만이 일부 남아 있을 뿐이다.

1936년 조사 당시 밑부분 넓이 9.5m, 외벽 높이 3.5m, 내벽 높이 2m로 남쪽은 흙으로, 북쪽은 돌을 섞어서 쌓아올렸다. 이 유적은 신라의 고분군 또는 반월성(半月城)과의 연관성이 없는 것으로 보아, 고려 시대 읍성(邑城)의 잔해이거나 읍성의 수재(水災)를 막기 위한 제방(堤防)으로 추측되고 있다.

한편 『고려사(高麗史)』에서는 1012년(현종(顯宗) 3) 경주에 축성을 하였다는 기록이 있고, 『동경잡기(東京雜記)』에서는 고려 현종때 전라·충청·경상 3도의 군졸을 동원하여 북천에 석축의 제방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으며, 1993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 부분적으로 시굴조사를 실시한 결과 성벽의 기초석축과 해자시설이 확인되어 고려시대 축성된 읍성의 외성일 것으로 추정되었다.




경주남고루전경

성동동24번지수목제거후토루노출상태

황오동68-1번지석축벽노출상태

황오동28번지석축벽노출상태

성동동24번지석축벽및물웅덩이노출상태

경주남고루 비석

경주남고루 전경1

경주남고루 전경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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