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몽룡, 월매도, 견본수묵, 119.2*53.0cm, 국립중앙박물관
눈 온 뜰에도 봄은 어느새 들어와 남도 곳곳에선 매화꽃 소식이 간간히 들려온다. 매화는 추위를 이기고 가장 먼저 봄을 알려주는 꿋꿋함과 고결함으로 예로부터 문인들의 품격과 이상을 반영하는 꽃으로 여겨졌다. 이 때문에 매화도는 한·중·일 삼국의 회화사에서 문인사대부들의 意趣를 가장 잘 표현하는 畵目의 하나로서 애호되었다.
매화는 하나의 꽃이지만 이를 대하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상징성을 지니는 것으로 여겼다. 유교적 가치관에서는 군자의 꽃으로서 은거하는 선비에 비유되었으며, 불교에서는 매화의 맑고 깨끗한 모습에서 淸秀한 스님을 연상해, 깨달음의 꽃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도교에서는 신선사상과 연관지어 매화의 자태를 선녀와 같다고 했으며, 민간에서는 봄이라는 계절을 상징하며 희망을 읽어내기도 했다.
이러한 다양한 상징성 때문에 그림에서는 자연의 매화를 닮게 그리는 것 보다는 매화가 갖는 상징성을 어떻게 표현하는가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따라서 한 나라에서도 그리는 사람이나 시기에 따라 다른 경향을 보일뿐 아니라, 민족에 따라서도 표현상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한·중·일의 대표적인 매화그림을 보도록 하자. 조선시대 중기의 문인화가 어몽룡(魚夢龍, 1566~1617?)의 ‘月梅圖’는 화면의 중앙으로 곧게 뻗은 가지 끝에 둥근 달이 걸려 있다. 굵고 곧은 매화줄기는 오랜 풍상을 겪은 듯 모두 끝이 부러져 있고, 가지는 기운차게 뻗어 올라 잔가지에 듬성듬성 매화꽃과 봉오리를 달고 있다. 매화와 달이 이루는 간결한 구도로 시원한 여백을 두어 무한한 공간감을 느끼게 한다.
비백법으로 처리한 부러진 줄기는 마치 앙상한 뼈대만 남은 것 같아 매화의 강인한 면모를 보여주는 듯하다. 꽃은 갖가지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정면으로 보이는 꽃은 엷은 먹으로 다섯 장의 꽃잎을 동그랗게 그리고 중앙에 꽃술을 ‘*’모양으로 간단하게 그려 넣었다. 꽃의 옆모습은 엷은 먹으로 길쭉한 꽃잎을 그리고, 꽃술은 가운데 서너 개의 점을 찍고 양쪽에 뿔처럼 긴 꽃술을 그려 넣었다. 앙증맞은 꽃받침 위에는 동그란 봉오리가 방울방울 맺혀 있다.
긴 가지 끝에 은은한 둥근 달은 주변을 엷은 먹으로 바림을 해 먹이 묻지 않은 부분이 달처럼 보이도록 한 것으로 구름에 살짝 가린 듯 떠있다. 군더더기라고는 없는 간결한 구도와 깔끔한 세부 표현으로 고요한 달밤에 은은한 매화 향기가 전해오는 듯하다.
어몽룡의 ‘월매도’에서 본 구도, 줄기표현, 그리고 꽃 모양 등은 어몽룡이 활동했던 조선 중기 매화도의 특징이다. 간결한 구도나 곧게 뻗은 줄기모양도 그렇지만, 꽃술을 ‘*’모양으로 그리거나 특히 암술을 두 개 뿔처럼 세우는 것은 매우 독특한 표현이다. 이러한 특징은 중국의 매화도와는 다른 우리나라 매화도만의 독창적인 모습이다.
어몽룡이 활동하던 조선 중기와 같은 시기인 중국 명나라 말기의 매화도 중에 줄기가 부러지고 가지가 곧게 뻗은 매화그림이 없는 것은 아니나 이처럼 간결하고 압축적으로 매화의 특징을 보여준 예는 없다. 더구나 중국에서 매화도로 가장 유명한 원나라 말기 왕면(王冕, 1287~1366)의 매화도와 비교해 보면 표현의 차이는 실로 크다.
왕면의 ‘南枝春早’는 줄기는 아래로 굽어 S자 모양으로 휘어져 올라가고 가지에는 만발한 꽃봉오리들이 가득 피어 매우 화려하다. 매화를 그린 상단과 중단에는 그림을 본 감상과 시를 써넣고 여러 사람의 도장이 찍혀 있어 화면에는 빈 공간이 거의 없다. 우리나라 화가들이 그림을 그리지 않는 빈 공간도 그림의 일부로 생각하고 비워두었던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왕면의 매화도는 잔가지가 많고, 가지에는 많은 꽃이 피어있다. 꽃은 선으로 꽃잎 하나 하나의 윤곽을 그렸는데, 약간 굵고 가는 선에 변화를 주어 꽃잎이 탱글탱글하고 경쾌한 느낌을 준다. 매화도에 쓰인 시에서는 문인정신을 노래하고 있지만, 그 표현방식은 이전시기 문인들의 매화도와 큰 변화를 보인다. 왕면은 관리가 되려고 했으나 여의치 않자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직업화가의 길을 택했던 사람이다. 그의 그림은 크기와 재료 화풍이 다양한데, 이는 다양한 후원자의 요구에 응했기 때문이다. 이는 자신의 심회를 표출하는 수단으로서만이 아닌 상품으로서 매화도가 제작된 관행을 보여준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명대 몇몇 화가와 청대 화가들에 의해 계승됐고 우리나라에서는 19세기 여항화가들의 매화도에서 일부 그의 영향을 읽을 수 있다.
일본의 매화도 중 일본적인 특징이 가장 잘 표현된 작품이 에도시대 오가타 고린(尾形光琳)의 ‘홍백매도병풍’이다. 이 병풍은 금박바탕에 화면 중앙에는 도안화한 물결모양의 강물이 흐르고, 왼편에는 백매를 오른편에는 홍매를 그린 것이다. 두 그루 매화 사이에 물이 흐르는 모습으로 표현한 것은 예로부터 물가에 핀 매화를 읊었던 水邊梅일 수도 있으나, 일본에서 학문과 천둥·번개의 신으로 추앙받고 있는 스와가라 미치자네(菅原道眞)에 얽힌 飛梅전설과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 901년 다자이후(大帝府)의 지방관으로 좌천된 스와가라 미치자네의 정원에 있던 매화가 하룻밤 사이에 다자이후로 날아왔다는 것이다. 그러한 공간감을 물로써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오카타 고린, 紅白梅圖屛風, 금지에 채색, 115.6*172cm 일본 世界救世敎 |
왼편의 백매는 고목의 매화둥치에서 휘어진 한 가지가 물가에서 꺾여 올라간 구도를 보인다. 고목의 매화줄기와 새순의 곧은 가지를 대비하였고, 줄기에는 푸른색으로 이끼를 표현하여 고목으로서의 매화나무의 특징을 살렸지만, 줄기와 가지는 거의 평면에 가깝고 꽃모양 또한 같은 모양이 반복되어 도안화된 모습이다.
오른편의 홍매는 백매에 비해 어린 나무로, 나무의 전체를 드러내고 있다. 꽃 색깔만 다를 뿐 곧게 뻗은 마들가리나 이끼점 등 백매의 표현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또한 평면적으로 처리된 줄기나 한결같이 같은 색을 띠는 꽃모양 등 매화의 상징성이나 자연스러운 모습보다는 장식적인 경향이 짙다. 두 그루의 매화에서 보인 장식성은 화면 가운데 비단폭처럼 펼쳐진 물길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어몽룡의 ‘월매도’를 비롯한 우리나라의 매화도가 매화의 강인하고 고고한 상징성에 더 큰 비중을 두었다면, 왕면의 ‘남지춘조’를 통해 본 중국의 매화도는 꽃이 많고 탐스러워 화려한 특징을 보인다. 이에 반해 일본 고린의 ‘홍백매도병풍’의 매화도는 인위적인 왜곡과 단순화로 장식미를 극대화했다. 헤이안시대 이전 일본을 대표하던 매화가 10세기 중반 벚꽃에 자리를 빼앗긴 이후, 일본인들의 의식속에 매화는 무사의 꽃으로서 특유의 양식을 선보인 것이다.
매화의 원산지는 중국이라 하고, 우리나라에서도 5백년이 넘은 매화가 전하는 만큼, 매화는 같은 매화이지만 시대와 민족에 따라 얼마나 다르게 표현할 수 있는지 매화도를 통해서도 볼 수 있다. 16세기 愛梅家라는 퇴계 이황은 매화를 두고도 때에 따라 다르게 읊어 한 권 책을 이루었으니 말해 무엇하겠는가. 해마다 봄을 맞는 즐거움에 찾았던 매화가 올해는 어떤 모습으로 꽃을 피울지 궁금해진다. 이선옥 / 전남대·미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