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구황리금제여래좌상(국보 제79호)과 함께 경주구황리삼층석탑(국보 제37호)에 안치된 사리함 속에서 발견된 불상이다. 전체 높이 14㎝의 순금으로 만든 불상이며 대좌(臺座)와 광배(光背)를 모두 갖추고 있다.
민머리 위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큼직하게 솟아 있고, 얼굴은 갸름한 편이나 두 볼에는 살이 올라 있다. 눈은 정면을 바라보고 있으며, 콧날은 날카롭고 입가에는 미소가 번져 있다.
약간 좁은 어깨에는 두껍게 표현된 옷을 걸치고 있는데, 앞면에는 U자형의 옷주름을 새기고 있다. 치마는 발목 부분에서 양쪽으로 약간 퍼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 삼국시대의 불상 양식이 아직 남아 있는 모습이다. 오른손은 들어 손바닥을 보이고, 왼손은 옷자락을 잡고 있다.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을 상징하는 광배는 머리 뒤에 원형으로 표현하였는데, 불꽃무늬에 둘러싸여 전체적으로 보주형(寶珠形)을 띤다. 원 안의 연꽃무늬를 중심으로 빛이 뻗어나가는 모양을 하고 있으며, 가장자리의 불꽃무늬는 섬세하게 뚫을새김하였다. 대좌는 따로 만들어 끼운 것으로 12각의 받침 위에 엎어 놓은 연꽃무늬를 큼직하게 새겼다.
머리와 신체의 적당한 비례, 옷주름의 형태 등을 볼 때, 삼국시대 후기의 불상에서 좀 더 발전한 통일신라 초기 새로운 양식의 불상으로 보인다. 사리함에 새겨진 글을 통해 692년에 탑을 건립할 때 넣은 것으로 추정되는 이 불상은 만든 연대가 거의 확실하여 통일신라시대 불상 연구에 있어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전문설명 대좌(臺座)와 광배(光背)가 갖추어져 있는 금제불상(金製佛像)이다.
복판(複瓣)의 얕은 복련좌(伏蓮座) 위에 꼿꼿이 선 상으로, 머리가 소발(素髮)에 육계(肉계)는 높지 않으나 큼직하다. 얼굴은 갸름한 편이나 두 볼에 살이 올라 있고, 눈은 정시(正視)인데 콧날은 날카롭고 입가에는 엷은 미소를 머금고 있다. 목에는 삼도(三道)가 없고, 오른손은 들어 손바닥을 보이고 왼손은 법의(法衣)자락을 잡고 있다. 통견(通肩)의 법의(法衣)는 두꺼운데 앞면에서 U자형으로 주름이 나 있고, 좌우로 약간 퍼져서 고식(古式)을 지니고 있다.
광배는 원형을 중심으로 화염(火焰)에 둘러싸인 보주형(寶珠形) 두광(頭光)으로서, 작은 원권(圓圈)안의 연화(蓮華)를 중심으로 광망(光芒)이 방사(放射)하는 모양이며, 가장자리에는 화염문(火焰文)을 투각(透刻)하여 세공(細工)을 다하고 있다.
연화대좌(蓮華臺座)에 푸른 녹이 있을 뿐 광배와 온몸에는 금빛이 찬란하다. 일부에서 고조(古調)를 띠고 있으면서도 새로운 양식으로의 전이(轉移)를 알아 볼 수 있다.
이 불상은 금제여래좌상(金製如來坐像)(국보(國寶) 제79호)과 함께 1934년 경주시(慶州市) 구황리삼층석탑(九黃里三層石塔)(국보(國寶) 제37호)에서 발견되었는데, 이들 불상과 함께 장치(藏置)되었던 사리함(舍利函)에는 다음과 같은 명기(銘記)가 있어 연대 추정에 많은 시사를 주고 있다.
명기(명기)의 신룡(神龍) 2년은 신라(新羅) 성덕왕(聖德王) 2년(706)이다. 신룡이년병오오월삼십일 금주대왕불사리사전금미타상육촌일구무구정광대다라니경일권안치석탑제이층이상(神龍二年丙午五月三十日 今主大王佛舍利四全金彌陀像六寸一軀無垢淨光大陀羅尼經一卷安置石塔第二層以上)
경주 구황동 금제여래입상 경주 구황동 금제여래입상 경주 구황동 금제여래입상 경주 구황동 금제여래입상 경주 구황동 금제여래입상 경주 구황동 금제여래입상 경주 구황동 금제여래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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